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칼국수 맛집에 갔다.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었지만, 정돈된 느낌이 괜찮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집중해 시끌벅적했지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마주 앉아 다리를 쭉 뻗었는데, 발밑에서 남편의 발이 살짝 닿았다. 별것 아닌 그 감촉에 나는 문득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떠올랐다.
그 아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는 남편(구 남친)과 연애 초반이었다. 작고 여린 생명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나는 조금 겁이 났고, 구 남친이 대신 강아지를 품에 안고 집에 데려왔다. 그래서였을까, 강아지는 시간이 지나도 우리 가족처럼 구 남친을 잘 따랐다. 강아지 데려오면 내다 버린다고 했던 아빠도 침대 위에서 강아지와 함께 주무시곤 했다. 강아지는 가족의 막내 역할을 하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작고 복슬복슬한 몸으로 집안 여기저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강아지. 식사 시간이면 늘 내 발밑에 조용히 몸을 말고 앉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무심히 발끝으로 따스하고 작은 아이의 등을 쓰다듬곤 했다.
내가 힘들때나 슬플때 기쁠때. 말그대로 희노애락을 함께한 가족이었다. 내가 출산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난 후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산책도 더 자주 시켜주고, 우리 아이들과도 공원에서 함께 신나게 뛰어놀았을 텐데. 해주지 못한 일들만 떠올라 마음이 아려왔다. 그동안은 잘 이야기하지 않았던 걸 입밖으로 꺼내니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윤석열 대통령 최종 심판일이었다. 옆자리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결과에 환호했고,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 사이 나는 혼자 다른 이유로 울고 있었다. 남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 지금 울면... 사람들이 오해하겠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멈추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움은 별일 없는 순간에도 불쑥 찾아온다. 남편의 발에 닿은 감촉 하나로 예전 기억이 떠오를 줄은 몰랐다. 잠깐 울고 웃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저 뛰노는 강아지를 보며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강아지를 추억할 뿐이다.
알고리즘을 통해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쇼츠를 몇 개 봤는데, 거기서 천국에 간 강아지들이 천국에 온 주인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모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을 장면이다. 우리,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자. 항상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