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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Feb 05. 2021

보석 같은 사람

작년 10월부터 탄생석에 대한 글을 썼다. 

2월이 왔다. 내가 만든 마감 날짜에, 어릴 적 방학 끄트머리에 비어있는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자수정에 대한 이미지들을 찾아보고, 공부했던 자료들을 하나씩 둘러보다 살짝 지겨워졌다. 두리번거리다 책 한 권을 들었다. 기대감 없이 그냥 읽기 시작했는데, 첫 페이지에 큰 구멍이 뚫리면서 내 손을 낚아채고는 그 세상으로 끌고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다.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어둡고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버스 한 대가 가까이 온다. 젊은 여자가 내렸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밤은 투명인간 망토를 걸친 듯, 들키지 않고 주인공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읽었다. 어젯밤, 같은 작가의 단편소설 두 편을 걸으며 그곳 사람들을 만났다.


소설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 없다. 누군가는 눈은 보이고, 또 다른 이는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코와 입술이 보인다. 또 어떤 이는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을 달고 있을 때도 있다. 어젯밤에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얼굴을 그려볼 시간도 아까운 듯 삶에 밀려 바닥으로 향했다. 영화와는 다르게 소설 속 사람들의 서글픔의 무게는, 보일 듯 보이지는 않는 그들의 얼굴처럼 희미한 무거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가난으로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덮고, 모니터로 눈을 돌려보니 참고자료로 사용하려는 값비싼 보석 사진들이 나를 쳐다본다. 내 마음도, 머리도, 손가락도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석에 관련된 글을 잘 써 보려고 들었던 책 덕분에, 2월 탄생석에 대한 글은 시작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꽤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들어졌어요.”라는 귀걸이와 팔찌, 반지와 목걸이들을 접어서 넣었다.



보석의 삶, 우리들의 인생

오늘은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보석들이 쉬지 않고 따라다녔다. 루비도 보이고, 사파이어도 지나가고, 진주랑 산호도 바닷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러고 보니 반짝이는 보석들도 안을 들여다보면 쉽지 않은 삶이다. 우리의 것과도 닮은 부분이 있다. 


그들은 태어나자 등급이 매겨진다. 보석(Precious Stone, Fine Stone)과 준보석 (Semi-Precious Stone), 그리고 준보석에도 들지 못하는 광물이지만 장신구로 사용되는 것들이 있다.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가족이 되어도 (광물종, Mineral Species), 루비나 사파이어와 같이 (Corundoum) 남매들은 완전히 다른 성격과 크기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같은 수정(Quartz) 가족이지만 값어치로 순위가 나누어진다. 사실 이런 경우는 꽤 많다. 대부분의 보석들은 자신의 등급이 새겨진 숫자를 꼬리표처럼 늘 달고 있어야 한다.


땅 속이나, 바닷속에 얌전히 잘 지내고 있는 그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어서는, 흙을 털어 씻어주고 다듬는다. 그래도 뭔가 신통치 않으면 성형외과 의사에게 보내어진다. 얼굴 형태를 깎고, 피부색도 변화를 준다. 여기까지 준비가 되었다면, 원치 않아도 오디션에 참가해야 한다. 심사위원들의 점수에 따라서 최고점을 받은 그룹부터, 이제는 디자이너 선생님께 맡겨진다. 몸의 치수를 재고, 가장 어울릴 소재의 옷을 입게 된다. 이 과정도 만만치 않다. 뾰족한 4개나 5개의 금속이 꼼짝하지 못하게 잡고 있거나, 몸 전체를 두르는 코르셋을 입혀 뻣뻣하게 앉혀 놓기도 한다. 그리고는 늘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떤 순간에도 '반짝' 할 것을 요구받는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의 빛이 쏟아져 내려도 큰 눈을 하고 웃고 있어야 하며,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우스운 이야기를 듣고도 허리를 뒤로 하고 원 없이 웃어볼 수 없는 삶이다.



하지만 우리들 인생이 그러하듯, 힘들고 뻣뻣한 시간만 있지는 않다. 보석으로 태어나 그들만이 누리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하나뿐인 날, 기념하는 날을 위한 선물상자 안에는 반짝이는 그들이 있다. 행복한 기억을 담아, 힘들고 지칠 때면 사랑하는 그들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한다. 세대를 거쳐, 할머니의 사랑은 딸과 손녀의 귓가에, 손가락 어딘가에 걸려있다.


보석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화학작용과 열과 압력이 딱 맞아떨어지면, 어쩌다 보니 '그 보석'으로 태어난다. 보석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오게 될 때 우리 손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의 부모를 결정할 수도, 내가 태어나 생활하게 될 집도. 태어나니 지구 상의 어느 곳, 어느 가정의 누구로 정해져 있다.


흑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어 낸 보석이야말로 그 값어치는 커진다. 나는 자수정으로 태어났는데, 내가 왜 다이아몬드가 아닌지, 나는 왜 붉은 루비가 아닌지를 하늘을 향해 쉬지 않고 울어보아도, 나는 바뀌지 않는다. 나는 오랜 시간을 땅에서 버티어 낸, 자색을 가진 Amethyst이다. 나는 바쿠스와 다이애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집트에서부터 사랑을 받아 온 나만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가짜 다이아몬드가 되려고 하기보다, 자수정다운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 가장 빛날 수 있는 각도의 Ideal Cut을 향해서, 갈고닦으며 내 모양에 맞는 옷을 입게 될 때, 나는 보석 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보석의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남과 비교하는 내 마음을 접어서 넣어두려고 한다. (페북이나 인스타에서 보게 되는 타인들의 완벽한 행복함에 작아지는 마음도 잊지 말고 넣어 둘 것이다.) 오늘부터 1일. 무리하게 바꿔야 되거나 이루어 내야 하는 것들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습관들부터 걷어내어 보기로 한다. 큰 것 말고, 부담 없는 작은 것부터. 그렇게 탄생석의 12가지 이야기를 겪고 나면, 나는 가장 나다운 반짝임을 가진 보석 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당신의 탄생석을 닮은,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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