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그녀의 응원이 필요해
“오늘은 봄날 같네.”
아침에 엄마가 창문 넘어 하늘을 보시며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햇살이 따뜻함을 담고 있다. 오랜만이다. 간접조명 6.5 정도의 밝기로 완만한 푸근함을 가지고 집 안 구석구석 온기를 채워준다.
읽고 있던 문장에서는 셀렘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내 눈은 글자 모양을 오르락내리락 긴 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어린 왕자가 보았다는 보아뱀의 실루엣들이 사이즈별로 다 모여있는 듯하다.
“설레지가 않네.”
설렘을 강요하는 듯한 문장을 끊어버리고, 옆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 3의 얼굴을 보았다. 봄과 같은 친절한 햇살 때문인지,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입술 꼬리를 양 옆으로 올리고 웃는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다행이다. 너는 행복해서.
한 때는 꽤 많이, 자주, 설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설레는 마음의 짙고 옅음을, 음(音)의 높낮이로 표현되는 앱이 있다면, 아마도 꽤 괜찮은 노래 한곡만큼은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렘으로 가득 찬 마음은 풍선 같았다. 날아가지 않을 만큼 발 끝으로 간신히 땅을 딛고 다녔던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저 멀리 있지만, 분명히 기억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설레었던 때가 언제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많던 나의 설렘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나를 버리고, 아니면 나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음에도 나는 왜, 단 한 번도 떠나지 말라고 손 한번 잡지 않았을까. 내게 많은 신호들을 보냈을 텐데, 그 시그널들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짐을 싸기까지 무너져 내렸을 그들의 마음을 떠올려보니 미안함과 뒤늦은 후회만 가득하다. 지금의 나는, 그저 의자 다리를 발로 툭툭 쳐 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다.
봄이 오면 셀렘도 함께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은 청소를 해야겠다. 내일도 햇살이 좋다고 하니 무릎담요며 쿠션들도 툭툭 털어서 비타민 D를 보충해 줘야겠다.
또 다른 나의 시작은 그들의 응원이 필요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시작은 설렘과 함께 해야 한다.
설이 온다. 우리에겐 해마다 두 번의 기회가 온다. 한 달을 넘실거리고 기웃거렸으니, 이젠 진짜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1월 1일. 노트나 마음에 적어 둔 계획들이 벌써 흘러내릴 듯한다면, 다시 다듬어 올리면 된다. 우리의 설은 너그럽고 따뜻하다. 하지만 세 번은 없다.
계획한 일들과 정해놓은 루틴에서 내려오지 않도록 몸을 세우고, 턱을 올려본다.
모든 이들에게 비치는 햇살처럼 시간은, 설을, 새로운 시작을 꼭 같은 크기만큼 우리에게 전한다. 이번 해엔 ‘설렘’을 넉넉히 챙겨서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한 세트. ‘당신’도 한 세트.
무언가를 계속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구독자님들, 그리고 지금 읽고 계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설에는 설렘과 용기가 담뿍 담긴 ‘복’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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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by WAYNE THIEBAUD
00 : Lipstick Row, from Seven Still Lifes and a Rabbit LINK
01 : Two Jackpots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