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아버지의 손자가 보낸 선물

브런치에서 3개월

by Dear Ciel

시간이 머뭇거리듯 조용히 지나간 성탄절. 아쉬운 마음은, 성냥불 안에 남아 있는 성탄절의 기억들을 잠시나마 보여준다. 빛나는 코를 한 루돌프와 친구들이 흩날리는 눈 사이로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착한 어린이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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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믿냐는 질문을 받는 나이를 지나니, 아주 가끔씩이긴 하지만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되었는지 물어온다. 몇 살부터였는지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만큼 나는 오래된 어른이 되어 버렸다.


기억을 10살 근처 성탄절 이른 새벽으로 돌려보니 어두운 방, 조심조심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함께 깨어있던 동생에게 엄마나 아빠가 민망하지 않도록 잠들어 있는 척해야 된다고 말한다. 아마도 나는 10살보다 훨씬 더 어렸을 무렵부터, 어쩌면 단 한 번도 산타클로스로부터 받은 선물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물을 몰래 두고 나가는 부모님이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했던 그때나, 세월이 덧없이 흘러 그냥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고 있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를 쳐다보던 어떤 어른친구의 얼굴과 표정을 본 이후부터는 사람들 앞에서 한마디도 거들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넓디넓은 세상, 내게는 나의 성탄 선물을 챙겨주는 부모님이 계시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은, 선물이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타났을 거라는 생각을 꼬마 때부터 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세상의 허망하고 황망한 이야기를 접하게 될수록, 믿거나 믿지 않는 ‘예 또는 아니오’ 식의 답이 아닌 그런 존재에 대한 소망으로 바뀌었다.




며칠 전, 팬데믹의 영향으로 색다른 성탄카드를 친구로부터 받았다.


GrandsonSanta.jpeg 코로나 때문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실직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이한다.


나를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산타클로스 손자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소망은 사실 이루어졌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성탄절 당일까지의 이야기다.


만나는 약속 하나 없게 된 2020년 성탄절. 따뜻한 티-라테를 만들어서 댓글방에 모여 앉은 글들을 만나고 대댓글을 지어보는 나의 ‘행복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브런치에 접속했다. 댓글 알람 사이로 처음 받아 본 메시지를 발견하고 통계버튼을 눌러보았더니, 나의 가난하고 소박한 조회수가 부자 옷을 입고 명품 귀걸이까지 하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잘못 보았나 싶어서 유입경로를 찾아보았더니 엄청난 숫자들은 다음(daum.net)을 통해서 ‘예쁜 코를 가지게 될 그날’로 움직이고 있었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보아도 나의 글은 보이지 않았고, 어떤 방식으로 나의 글을 클릭하게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포스팅을 했던 그날, 글의 흐름과 어울릴 이미지를 정하지 못해, ‘없으면 내가 만들지 뭐’ 하고 호기롭게 디지털 브러시를 사용해서 테스트 삼아 그려 보았던 내 초상화 그림을 일단 내리고 다시 읽어 보았다.


클릭한다고 해서 모두 끝까지 읽었다는 뜻도 아니고, “그것 참 좋은 글이로군. 나의 소중한 시간이 아깝지 아니하니 이 글쓴이에게 라이킷을 던져주지.”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겠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그. 토. 록. 많은 클릭수를 내리쬐는 감각은 마치 나의 몸이 이 세상이 아닌 어느 생경한 장소에 붕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글쓰기 어리바리 등급의 나는 촌스럽게도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기쁘긴 했지만, 글 통계 1위의 하루 조회수와 최대 3개월 묵은 나머지 글들의 조회수 사이의 멀디 먼 간격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꼈다. 예쁜 코를 이야기하던 그날 밤과 베토벤을 기억하던 그날 사이에 갑자기 글을 잘 쓰게 되었을 리도 없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바뀐 것 없이 고만고만하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것은 산타할아버지의 손자가 출근 첫날 긴장한 탓에 실수로 내게 던져준 선물임이 분명하다.


산타 손자님 고마워

브런치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시작한 이곳 생활이 딱 3달 되었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이메일을 통해 전달받고 글꼴을 써 내려가기를 90일. 남들이 쓴 글들을 읽어 보면서 오히려 글쓰기라는 것에 겁을 먹게 되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건만, 이제는 구체적인 물성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런 분들이 쓴 진짜 글쓰기를 읽어보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곳은 출판된 책이나 신문기사의 글에서 느낄 수 없는, 이웃 작가님들의 작은 숨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그들의 하루가 담겨있다. 글을 통해서, 삶의 순간들 사이를 지나던 나의 기쁨이나 아픔도 특별할 것 없음을 마주하고 위로를 받는다.


나의 글을 구독해 주시고 끝까지 읽어 주시는 분들, 라이킷 해 주시는 분들이 잠시나마 머무르게 되는 공간. 댓글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 곳에 집을 짓기로 한 것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지나가고 있는 올해, 나의 몇 가지 안 되는 ‘참 좋은 결정’ 중의 하나이다.


122720B.png 그림 2


쉼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자투리 천들을 끄집어내어 글쓰기라는 퀼트(Quilt) 작업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조각 천의 모양과 색상을 이리저리 맞추다 보면 색감도 모양도 나름 연결이 되어 있는 이불 덮개를 만들기도 하고, 도무지 입고 나갈 수는 없는 덧옷을 지어놓은 날엔 아깝긴 하지만 결국은 뜯어내고 다시 이어 붙이기를 반복한다.


브런치라는 마을에 이사오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버려졌을 나의 옛 기억과 생각의 천들을 만지고 다듬어보니, 나라는 사람의 색과 자주 사용하는 모티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퀼트 작업이 손에 익숙하게 될 어느 때가 오면, 처음부터 계획하고 디자인을 한 작업을 시도해 보고 싶다. 내가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와 색상을 통해서 나의 소망을 한 땀 한 땀 지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을 쓰는 나, 넉넉한 구독자와 댓글을 일상으로 담고 있는 나를 상상으로 만나보는 것조차 요원하다. 솔직히 그러한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얀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는 그날의 내가 기꺼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무게감으로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통계를 다시 눌러보았더니, 엎어진 V 자 형태로 바닥에 뻗어있는 나의 조회수를 발견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만, 불쌍한 내 조회수의 다친 상처도 내 마음에도 빨간약을 발라 주어야겠다.




main image : by Norman Rockwell LINK

그림 1, 2 : by Rachel Grant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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