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받아쓰기 01 ] 듣기
쉬지 않고 이어가던 취미생활이 있었다면 그림을 잘 그리는 누군가의 작업을 한 걸음 뒤에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감탄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오면 어색하게 앉아 있는 나의 그림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 아티스트들이 쉽게만 그렸던 선과 붓 터치는 내 손으로는 이룰 수 없는 짝사랑과 같았답니다. 내가 그린 그림들은 내 눈으로 봐도 아름답지 못했지만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회사 일들을 잠시만 셧다운 시키고 싶을 때, 왠지 오른쪽과 왼쪽 어깨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자동차 트렁크에 늘 준비되어 있는 커다란 스케치북과 보드를 들고 익숙한 아틀리에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30초, 1분마다 바뀌는 모델의 포즈에 따라서 팔을 쭉쭉 뻗어 선과 면을 만들다 보면 스튜디오에 흐르고 있던 배경음악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그림 수업을 듣고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한숨이 나오는 저의 그림들이지만 괜찮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탤런트는 다르니까요. 저는 잘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화실 원장님이 내려주시는 커피를 마시고 가지고 온 쿠키를 나누어 먹으며 다른 이들의 작업에 박수를 보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한참의 거리를 두고 되돌아보니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림을 좋아하시나요?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갤러리나 미술관을 자주 찾으시나요? 아니면 저처럼 직접 클래스를 찾아서 듣기도 하고 따로 시간을 내어서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요즘은 그림 그리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는 블로그나 동영상들이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그림을 배우고 그리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을 듣거나 읽어보는 것은 어떤가요?
여러분 앞에 가려진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이미지를 보기 전에 눈을 감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목소리로 먼저 만나 봅니다. 머릿속의 스케치북을 펼치고 들었던 설명대로 그려봅니다. 완성이 되면 가려져 있었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의 그림과 비교를 해 봅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입니다. '재미있겠는데?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림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느낀 것은, 마치 글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들리는 그림을 내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시간에는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배운 언어, 그 언어의 단어와 그것으로 만들어내는 문장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초대된 기분이랄까요. 그 공간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리다 보면,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을 떠나, 도착하는 곳은 나를 위한 나만의 무대였습니다. 속도를 멈추고 생각 속으로 빠져서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늘 하던 대로 바라보던 그림이 아닌 조금은 색다른 방법을 통해서 그림과 사람들과 나 자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저만의 생각이었던 커다랗고 무거운 바위를 움직이고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에서부터, 첫 번째의 설렘을 담아서 시작합니다. 그림을 들어보세요!
사실 한글로 된 설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영어 듣기가 쉬우신 분들에게도, 몇 번을 들어봐야 되는 분들에게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편하지 않다면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방법은 잘 그리려고 하는 마음은 접고 남들이 볼 수 없는 나만의 일기장을 써 내려하듯 그려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릴 수 없으면 글로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요. 어떤가요? 훨씬 덜 부담스러우시죠? 워밍업이 끝이 나셨다면, 참고했던 그림, 어떤 분에게는 퀴즈의 정답일 수 있는 그림과 내용을 다음 장에서 만나보세요. :)
Queen City, Augusts Jansson
A Parisian pied-à-terre curated, Hubert de Givenc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