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곁에 있는 그대들에게 감사
메멘토 모리 1이라는 글은, 오래전 미주 한국일보에서 보석 칼럼을 쓰고 있었을 때 연재했던 글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잠시 들어왔을 때, 유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던 경험이 딱 한 번 있었지만,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도 매달 글을 쓴다는 것은 감사한 기회였음에도 내게는 너무도 무거운 과제였다.
코로나발 집 정리를 하면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칼럼에 대한 기억은 스크랩북이란 형태로 돌아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니, 매달마다 중심 보석을 정하고, 무난한 정보를 사이드 스톤으로 마무리 한, 비 착장용 장신구들을 담아 둔 오래된 보석함 같이 보인다.
얼마 전, 지진이 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하다, 오랫동안 지병으로 병상에 누워 계셨던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9년 전 시작된 그분을 위한 매일의 기도는 이제는 달라져야만 한다. “조금 쉬고 싶어요. 정리가 되면, 그때 다시 연락할게요.”라는 메시지를 읽으면서 ‘그동안 수고하셨어요’라고 혼잣말로 되뇌었다.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면, 다시는 웃을 일도, 배가 부르게 먹을 일도 없을 것 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고, 햇살을 누리고, 웃음을 공유하고, 잘 먹고 잘 지내는 날도 다시 온다는 것이다. 그 또한 지나가고, 우리는 삶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 부고를 듣고 난 후 Mourning Jewelry에 대한 오래된 나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갑자기 어머니가 어렸을 때 예뻐서 사셨다는 커다란 붉은 알이 세팅된 반지를 떠 올렸다. 처음에 보았을 때, 만화에서 나오는 요술 봉에나 어울릴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는 그 반지를 내게 주셨다는 것도 잊고 계셨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그만두고 싶었을 때, 나는 그 반지를 손에 꽉 쥐고 반 걸음씩 더 움직였었다.
부모라는 이름은 너무도 커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남자와 여자이고, 나와 같이 꿈도 있었고, 하고 싶었던 것들도 많았던 소년과 소녀의 시절을 지냈으며, 연습 없이 어른이 그리고 부모가 되었다는 것을 한참을 자란 후에야 알게 되었었다.
나를 만나기 훨씬 전, 엄마의 푸르렀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예뻐서 그냥 샀었어.”라는 이름의 그 반지는, 속상하게 해 드린 마음이 우물쭈물 어찌해야 될지 모를 때도,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없어질 때에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다독거려 주었다.
매일 코로나로 확진자와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가 공식 집계되어 발표되는 요즘, 죽음에 대한 생각들은 어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변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는다.
다시 읽어 본, 빅토리안 시대의 추모 장신구들의 이야기는 박물관 속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하지만, 오래된 그 장신구를 통해서 전해오는, 죽은 이를 향해 그리워했던 그 마음은,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챙기며 지친 오늘도 함께 걸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