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적 위로가 필요한 날
업무 중 실수를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이 익숙해졌다고 착각한 시점에 생긴 방심이었다.
차라리 정말 바쁜 날이었다면 변명이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조금 여유가 생겼고 업무적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실수를 했다.
인계 도중 장루 주머니 관리에서 허점이 생겼다.
2시간마다 대상자의 주머니를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괜찮았으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겹쳤다.
아침 인계 시간, 장루 주머니는 결국 터졌고, 그 장면을 꼼꼼한 선배와 나를 곱게 보지 않았던 케어러들 앞에서 맞닥뜨려야 했다.
날 선 분위기를 그대로 느낀 후 퇴근 후 차에 앉았다.
그 순간 머릿속은 불안하고 공포스러웠다.
"이거 매니저들에게 보고 들어가고 잘리겠다. 나 아직 수습기간인데"
"면허 박탈되는 건가?"
야간 근무 후 수면 부족과 그 위에 올라탄 불안과 죄책감은 현실보다 몇 배는 부풀려진 시나리오를 만들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는 감정이 이렇게 요동칠 때마다 항상 같은 패턴에 빠진다.
- 시야가 좁아지고
-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겁을 먹고
- 스스로를 과도하게 처벌한다.
이럴 때 나에게 필요건 T적 처방 즉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사실만을 적는다.
미숙함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이다.
숙련되지 않는 인력이 숙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이미 시스템 안에서 비용으로 계산되어 있다
내가 받는 시급에는 호주 사람들이 기피하는 노인 요양 산업의 특성 즉 보호자의 컴플레인, 날 선 태도, 치매 거주인들의 돌발 행동을 감당하는 정신적 감가상각비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즉, 나는 공짜로 감정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대가를 지급받았고 그들은 그 대가에 포함된 옵션을 행사하는 중이다.
또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은 내가 거주인들의 안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업인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나는 이미 안일함의 대가를 치렀다.
그 비용은 ‘심리적 고통’이라는 형태로 지불되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도 이중과세는 없다.
이미 마음으로 벌을 받았다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
더 이상의 자책은 자기 성찰이 아니라 자기 착취다.
그리고 자기 착취는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나를 괴롭히는 건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꾸자. 인정을 구하는 대신, 지적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자.
뻔뻔하게, 나는 돈 값 하러 온 외노자다.
욕은 배경 음악으로 깔고, 시급은 통장으로 챙기고 그 돈 모아 마라탕두쫀쿠나 먹으면 된다.
내가 또 불안이 고개를 들 때를 위해 기억하고자 적는다. 그때가 오면, 나는 더 이상 생각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자 한다. 그때는 호주 최고의 복지인 자연으로 돌아가 큰 숨을 크게 한번 쉬어야지.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