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수고로움이 만드는 온전한 행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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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2월 31일. 이민 길에 오른 지 정확히 260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경험을 통과하며 때로는 실망하고 망가지기도 했으며, 무수한 실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아주 작게 찾아오는 성공을 자축하고, 누군가와 대화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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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엉키고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나는 펜을 꺼내 든다. 나에게 삶의 모든 순간은 거대한 학습장과 같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온전히 해석하고, 그중 나에게 필요한 조각들을 골라 지혜로 축적하는 과정을 나는 진심으로 즐긴다. 그러니 내 인생에 딱히 '실패'라 부를 만한 순간은 없다. 매 순간을 소거법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도처에 널린 실패들은 오히려 나라는 사람을 더 명확하게 알게 해주는 지름길이 되어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정답을 빨리 알고 싶고 나 자신을 단번에 파악하고 싶어 하는 조급한 성격이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오묘하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내게 가르침을 건네곤 한다.
진정한 우정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나와는 전혀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경험하고,
사랑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마음 졸이는 상실을 경험하게 하며,
시간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생의 마지막을 걷는 이들을 돌보는 일을 맡기기도 한다. 철저한 '통제형' 인간인 나에게 인생은 도무지 통제 불가한 요지경이지만, 바로 그 지점이 인생을 재미있게 만든다.
나는 똑똑하고 다정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사랑한다.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 벅찬 감정을 잃어버릴까 봐, 마치 두 손 가득 물을 담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고도 다급한 걸음으로 기록할 곳을 찾는다.
최근 한 친구와 인생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망한 기업에서 근무하는 그 친구는 완벽한 커리어와 재력을 갖추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 백인 남성 상사의 퇴직을 지켜보며 허탈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우리 사이에 놓였다.
그때 친구는 문득 게임 ‘스타듀밸리’ 이야기를 꺼냈다.
시골에서 농작물을 키우며 이웃들과 소소하게 소통하는 그 게임을 즐기던 중, 클릭 한 번으로 만렙이 될 수 있는 치트키(버그)를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치트키를 쓰는 순간, 모든 성취를 이룰 수는 있을지언정 하루하루 농작물을 일궈내며 느꼈던 온전한 행복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고 했다.
우리는 알게되었다. 인생도 이 게임과 비슷하다는 것을. 어차피 죽음이라는 결말은 정해져 있고, 삶은 그 끝에 닿기 전까지의 시간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거창한 꿈을 품되, 농작물을 키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일궈내는 것. 그리고 그 틈틈이 주변 사람들과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것.
그 대화만으로도 마음속에 기분 좋은 포만감이 차올랐다.
연말 파티 중, 갑자기 휴대폰이 고장 나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시야가 좁아졌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귀한 시간조차 잊은 채 전전긍긍했다. 그때 한 친구가 내 눈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
괜찮아, 너 건강하잖아.
몸만 건강하면 인생의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어.
이건 네가 태어날 때부터 있던
문제가 아니니까
다 해결 할 수 있는 거야.
넌 지금 아주 건강하잖아.”
그 봄바람 같은 다정함이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단숨에 날려 보냈다.
올해 나는 이 두 친구와의 대화를 이정표 삼아 살아보려 한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일궈내되 너무 무겁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건강하고, 모든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기분 좋은 새해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해피 뉴 이어!
올 한 해 2026년 부디 건강하고 밥도 많이 먹고, 무엇보다 사랑을 많이 주고받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