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확실한 고충

[네 번째 진담]

by 소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소한 고충’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무지 외반증 때문에 수술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또는 건강을 위해 절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충은 사소하지가 않다. ‘사소한 고충’이란 고충은 고충인데 보잘것없고 대수롭지 않아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경우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고충이지만, 타인에게는 그저 사소한 투정처럼 비추어지는 것. 사소한 고충의 슬픔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우리 엄마는 살이 찌지 않아 괴로워한다. 그러나 체중 감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지금 이 시대에 마른 사람의 고충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다. “그냥 많이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싶겠지만, 세상에는 많이 먹지도, 많이 소화시키기도 못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혼자만의 외로운 고충이다.

나에게도 사소한 고충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그것은 머리카락이 지나치게 두껍고 숱이 많다는 거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탈모인들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머리숱 고민’은 그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두껍고 지나치게 많은 머리카락의 고달픔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청바지를 입고 외출한 어느 날, 종아리가 따가워서 살펴보니 내 머리카락이 박혀 있었다. 두꺼운 내 머리카락은 청바지의 거친 표면도 뚫어버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겨울이면 니트에 머리카락이 자주 박힌다. 브라에 짧은 머리카락이 박히면 찾기도 힘들다. 계속 따가운 채로 시간을 견뎌야 할 뿐.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진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는 실이 떨어진 줄 알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눈에 너무 잘 띄다 보니 머리카락을 주우러 다니는 게 일상이 된다. 돌돌이로 찍어내고 손가락을 집게 삼아 줍는다. 덕분에 청결도가 조금은 높아졌을지도?

다양한 머리 스타일을 시도하기가 어렵다. 머리카락이 길어지면 부풀어 오르고 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짧은 머리 스타일을 유지 중이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내 머리는 ‘헬멧 머리’로 불린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걷게 되면 “괜찮아, 난 이미 모자를 썼으니까”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곤 한다.

머리카락이 굵고 숱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흰머리가 일찍 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물감이 부족한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제는 새치라고 얘기하기 어렵고 명백한 흰머리라고 불러줘야 할 만큼 수가 늘었다.

사소한 고충의 대부분은 타고나는 것으로 바꾸기가 어렵다. 또한 사소한 고충을 겪는 사람이 워낙 소수이다 보니 공감을 받기도 어렵다. 그냥 혼자만의 비밀처럼 지켜나갈 뿐이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누구에게나 사소한 고충이 있다는 거다. 타인에게 실컷 털어놓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고충들. 내가 나로 살아가면서 날마다 부딪혀 이겨내야 하는 아주 작은 고충들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말 못 할 사소한 고충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동경하는 어떤 사람,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도 분명히 사소한 고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잖아!’라는 생각은 언제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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