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진담]
지난해 제법 비싼 샤프를 샀다. 이름은 ‘카웨코 알블랙’. 가격은 6만 5천 원 남짓이다. 독일산 샤프인데 검은색이고 아무튼 디자인이 멋지다. 샤프를 사기 전에 실물을 보고 싶었지만, 매장에서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 들어가 다양한 리뷰를 들여다보았다.
“남들과 조금 다르고 싶다면?” “어른들의 샤프” “써본 샤프 중 최고입니다” “일본에서 미친 듯이 팔리는 샤프 TOP1” 등등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오! 나는 어른이고 남들과 다르고 싶고 샤프 덕후들 사이에서 미친 듯이 팔리는 샤프를 사서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으니, 왠지 나도 사야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고급스러웠다. 육각형의 두툼한 몸통에 클립 없이 쭉 뻗은 디자인. 왠지 시크해 보이는 블랙이라니. 당시 쿠루토가 KS샤프를 잘 쓰고 있었기에 고급형 모델인 쿠루토가 다이브에도 눈길이 갔지만 그래도 카웨코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평소에 검은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검은색으로 된 물건도 잘 안 사는 편인데 이상하게 카웨코 알블랙은 고급스러움이 느껴졌고, 그 멋스러움을 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인터넷 주문으로 내 손에 들어온 카웨코 알블랙. 샤프를 구매하면 가죽 케이스와 보호캡을 함께 준다. ‘잘못 떨어뜨리면 촉이 휠지도 몰라!’ 그날부터 애지중지하며 샤프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집에서만 썼다. ‘밖에 가져 나갔다가 상처가 생기면 어떡해!’ 시간이 조금 지난 후부터는 외부에서 글씨를 쓸 일이 있을 때도 동행했다.
물론 내가 카웨코 알블랙을, 거금 6만 5천 원을 들여 산 샤프를 쓰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만 느끼는 행복감이 있다. ‘나는 지금 카웨코 알블랙으로 글씨를 쓰고 있어’ ‘왠지 분위기가 멋진걸?’ ‘나 좀 괜찮은 듯?’하는 느낌들.
샤프가 많으면서도 샤프를 계속 사는 이유는 시시때때로 기분에 맞게 샤프를 바꾸어 쓰고 싶기 때문이다. 왠지 멋있고 싶은 날에는 카웨코 알블랙을, 글씨를 마구 쓰고 싶은 날에는 쿠루토가 KS를,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면 몸통이 나무로 된 레그노 샤프를 사용한다.
연필처럼 생긴 샤프를 하나 살까 하고 뚜레쥬르 샤프를 눈여겨보았지만, 아뿔싸! 나에겐 이미 연필 스타일의 샤프가 세 자루나 있다. 그래서 일단은 마음을 접고 지켜보는 중이다. 그런데 또 모르지. 언제 새로운 샤프를 구매할지는. 이 정도 소비는, 이 정도 사치는, 누려도 되는 것 아닐까? 그 이상의 행복을 내게 주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