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한 동생과 술을 한잔하며 이상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해서 세상은 지금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 모두 언젠가 알파고 형님의 지배에 따라가기 위해서 컴퓨터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 실없는 농담에서 진짜 논쟁이 오고 갔던 주제는 과연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어디까지 대체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우리 인류는 그것을 어디까지 용인 할 수 있을까? 였다.
동생의 주장은 빠른 시간내에 인간이 대체 될 수 있는 직업군은 AI와 기계로 대체가 될 것이었다는 것이고 나의 주장은 그 과정에서 반발이 일어나고 생각 이상으로 그 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윤이 가장 큰 기업의 입장에서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며 그 시점을 빠르게 당기는 기업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 동생의 주장이었고 나 주장은 노동자들의 1표의 힘이 무서워 기존의 정치인들이 쉽게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현대와 아마존이 생각나는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결국 기존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은 늦어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최근 많은 정부와 빅테크 기업들이 정부와 마찰을 빛고 있다. 미국이 아마존을 한국이 카카오톡을 중국이 알리바바를 알게 모르게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큰 이윤을 가지기 때문이나 정부를 우습게 보고 탈세를 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간의 충돌의 연장선이라고 생각을 한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발전 시킨 수천년동안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을 항상 충돌을 해 왔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정치 주체가 경제 주체를 이기는 형태로 진행이 되어왔다.
정치 권력의 정점인 왕의 한마디에 나라의 미래가 정해지고 정부의 한마디에 큰 기업이 흥망 성쇠를 겪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책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세기까지도 이어져왔다. 경제 대공항 당시를 배울때 우리는 루즈벨트의 뉴딜을 기억한다. 중국의 개방시기 등소평의 정치적 식견을 떠올리지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수많은 중국 관료 및 기업의 노력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계획이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고, 전두환 시절 먹고 살기 좋았던 것을 그 시대 사람들은 3저 호황이라는 거창한 경제 용어가 아니라 전두환 시절로 기억을 하는 한국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시기에 성장한 수많은 기업이 있지만 그 힘이 정치 권력에서 나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서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정부가 밀어주는 것이 중공업이냐 경공업이냐에 따라, 공업단지를 어디에 그리고 얼마에, 어디 에 전선과 도로를 넣어주는지, 그리고 올해 노동자들의 임금이 얼마인지, 세금이 얼마인지, 공장을 짓고 그와 관련된 제조를 하는 고전적인 업체들은 정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세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세계화 이후 정세가 변동하고 세상은 권력자 한두명의 식견으로 모든 것을 알기에는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세계화로 인하여 정부의 허가 없이 구 공산권 국가에 사업체를 낼 수 있고 예전의 원수와의 무역을 통해 돈을 벌수 있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발달로 더 이상 정부의 부동산 정책, 정부의 외교 정책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작은 사무실과 인터넷 하나면 정부의 눈치 없이 너도 나도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권력의 약진은 2000년도가 넘어가면서 가속화 되기 시작한다. 나에게 돈을 벌어다주는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애플 주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이후 세상에 풀린 유동성으로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경고하고 가상 화폐를 금지한다고 말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투자를 한다. 그리고 이점을 기업들 역시 잘 알고 있다.
중국 기업은 정부의 말을 무시하고 미국 증시에 상장을 한다. 최대한의 이윤을 낸다는 이유로 제 3국을 통하여 수많은 IT기업들은 탈세를 하고 사람을 짜르고 그 자리를 로봇으로 대체를 하기 시작한다. 정부 많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더 이상 땅과 국경의 제약이 필요 없는, 전기와 수도 처럼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것들을 공급하는 기업들이 눈치를 보는것은 전 세계의 이름 모를 주주들이지 더 이상 각국의 정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변화의 정부 권력들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최근에 시진핑 정권이 하는 정책들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 방위적인 제재는 중국 인민을 위한것도 타락한 기업 경영을 손보는 것이 아니라는 시진핑 본인의 장기 집권을 위한 것이라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유수한 기업들이 이러한 정책에 무릎을 꿇고 있다.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도 크게 다를게 없어 보인다. 수많은 빅데이터 기업으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은 그리고 일자리를 잃을 예정인 사람들, 그리고 그 기업들로 인해서 치킨 배달비를 울며 겨자 먹기로 내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들이 창출하는 고용인원 보다 많은 것은 당연하며 그 안에서 수억을 벌어가는 프로그래머의 1표와 일자리를 잃어버린 택시기사 1명의 표는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각국의 수많은 정치인들은 그 표를 의식 할 수 밖에 없다.
클린턴이 말했다. 문제는 경제라고, 그리고 이러한 전 세계 유수 기업들이 승승장구 하는 것을 보면 이 논리가 통용되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여전히 정치인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의 상황도 유사하다. 문제는 정치이다. 21세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교두보로 미국은 베트남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때문에 더욱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할 것이다. 이 역시 정치이다. 집단 정치와 권력 균형을 유지하던 베트남의 집단 지도 체제 역시 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예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투자를 앞두고 있는 많은 국가들이 이들이 중국처럼 변하지 않을까 라는 의심을 가질만 하다. 앞으로 베트남이 중국의 길을 걷게 된다면 분명 그들은 떠나갈 것이다. 이 역시 정치이다.
부디 이 나라의 지도부들이 현명하고 최선을 선택을 하기를 원하지만 권력 앞에서 얼마나 변하지 않을지 그것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