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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서재 Mar 11. 2022

4. 돌아오면 고국이 외국이 된다

한국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면

“자기는 외국에 처음 갔을 때 헬렌 켈러 같다고 했잖아. 눈이 있어도 읽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는데 말하지 못한다고. 그럼 다시 한국에 왔을 때는 어땠어?”


“외국 처음 나갔을 때보다 더 힘들었지.”


“진짜? 왜? 언어 문제도 없었을 거고, 그렇게 오래 다녀온 건 아니잖아. 평균적으로 3년 정도였으니까.”


“학창 시절에 3년은 크지. 중학교 전체가 3년이잖아.”


“아... 그렇게 보니 그렇네. 그럼 뭐가 제일 힘들었어?”


“언어가 힘들었지.”


“언어? 한국어를 그렇게 빨리 까먹었어?”


“한국어 자체를 까먹었다기보다는, 언어는 구사하는데 말이 안 통했어. 단어랑 문장을 안다고 말이 통하는 게 아니더라고. 공유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게 언어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비중이 더 높아. 교과서나 수업 따라가는 건 생각보다 금방 했는데, 아이들이랑 어울리면서 대화하는 언어 따라잡기가 힘들었어.”


“오 진짜?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 하긴, 나도 교환학생 갔을 때, 들리긴 들리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애들끼리 농담하는 게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


“맞아 맞아! 그렇게 맥락이 중요한 대화들이 굉장히 따라잡기 힘들어. 다른 아이들은 시즌 1, 에피소드 1부터 봤는데 나 혼자 한 시즌 5부터 시작한 느낌이랄까. 미국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애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는 하는데, 못 알아듣겠더라고. 어젯밤에 보았던 드라마 이야기, 유행하는 가수 이야기 등... 근데 진짜 문제는 아이들끼리 쓰는 단어였어. 가령 ‘짱' 같은 거.”


“’ 짱'이 왜?”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애들이 ‘최고 좋은 거, 1등’ 이런 뜻이라고 알려줬거든. 근데 다른 뜻도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 학교 복도 가면서 나랑 같은 색깔 명찰을 단 친구가 보이길래 인사했는데, 그 친구가 피식 웃으면서 ‘미쳤냐? 눈 깔아.’ 이러더라고.”


“... 걔가 그 학교 짱이었구나.”


“응. 근데 난 짱에게 ‘눈을 어떻게 까니?’라고 물어봤어.”


(크게 웃으며) “자기 맞았겠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남자 애들끼리 모이면 한참 사춘기니까 야한 이야기도 한단 말이지? 근데 그쪽 어휘력을 하나도 모르는 거야. ‘야동이 뭐야?’라고 물어봐서 애들이 당황하기도 하고. 게임도 모르고, 스포츠도 모르고... 이런 공통 주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대화 따라가기가 엄청 힘들더라고.”


“뭔가 따돌림당하기 엄청 좋은 조건인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떤 애들은 그런 거 걸고넘어지면서 시비도 걸고, 놀리기도 하고 그랬어. 난 의도하지 않았는데 기분 나빠서 싸움 날뻔한 적도 있었고.”


“정말 험난한 귀국이네...”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지. 외국에 갔을 때는 갑자기 ‘너는 왜 질문이 없니?’라고 토론에 참여하라고 해서 힘들었는데, 한국에 오니까 수업 시간에 손들고 ‘이해가 안 가요'라고 하는 건 금기에 가까운 행동이더라고. ‘아까 수업 때 이해가 안 갔어요'라고 교무실 쫓아갔다가 영문도 모르고 맞고 온 경우도 있었어. 그래도 사람이 적응을 굉장히 빨리 해. 어릴수록 더 빨리, 더 쉽게 적응하고.”


“안 그래도 요즘 학교 폭력이나 학교 생활 이야기 들어보면 애들이 무섭고 험하던데... 나중에 우리 아들이 만약 외국에서 학교 다니다가 돌아왔는데 따돌림당하면 어떡하지?”


“우리 때와 비교해서는 안될 것 같아. 옛날만큼 외국에 왔다 갔다 하는 게 드문 것도 아니고, 요즘 애들은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라 딱히 외국 다녀왔다고 어색하게 느끼지도 않아. 외국 갔을 때도 한국 문화나 유행 따라가기도 쉬워서, 돌아왔을 때 어색함도 훨씬 덜하고. 나때야 한국 드라마 보려면 차 타고 시내 가서 비디오를 빌려와서 봐야 했지만, 요즘엔 방 안에서 아이패드로 보면 되잖아.”


“하긴 그렇겠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근데 자기야, 나 궁금한 게 있어. 자기 학교 짱한테 ‘눈을 어떻게 까니?’라고 물어보고 어떻게 됐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갔어. 근데 나중에 내 반 친구 하나가 불려 가서 대신 한소리 들었대. 새로 온 놈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웃으며) “진짜 험난한 귀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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