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波動)」: 『물리』 공간의 한 점에 생긴 물리적인 상태의 변화가 차츰 둘레에 퍼져 가는 현상. 수면(水面)에 생기는 파문이나 음파, 빛 따위를 이른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파동 「005」>
스스로의 감각적 허기와 갈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닌, ‘비로소 세상에 스스로 드러내어 보이기 위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어떤 글도 쓰지 못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어떤 글이든 쓸 수는 있었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 세상에 드러내어 보인다 함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내 안에 있는 목소리가 바깥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지만, 성미에는 차지 않는다. 다만, 오늘 글을 쓰는 목적이 스스로 추구하는 이상(理想)에 다다르기 위함이 아니라 체한 것을 해소하기 위한 처치 혹은 요법의 느낌으로 삼기 위함이니, 다소 아쉬운 표현들이 나온다 해도 눈을 질끈 감고 넘어가 보기로 한다.
시작부터 해야겠다고 무작정 화면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 이 순간에도 참 두서가 없다. 세상에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그간 잔뜩 쌓여오기만 한 탓에, 어디서부터 어떤 것을 꺼낼지, 그 어떤 것도 정리가 되지 않은 탓이다.
갈래도 구별도 없이 그저 쌓아오기만 한 것들을, 이제는손님을 초대하기 전에집을 정돈하는 마음으로 잘 가다듬어 정갈하게 내놓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글이든 노래든 영화든 어떤 형태로든 표현된 예술에는 그것을 창조하고 창작하는 존재의 기준이 담겨 있는데, 나는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어찌되었든 좀 ‘친절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깊이 있는 문학적 소양을 갖지 않은 사람도, 특정 계통의 전문 지식을 소화해 본 적 없는 사람도……. 층을 가리지 않고 모두 편하게 읽고 소화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웬만하면 날것에 가까운 상태로 글을 자주 쓴다.
깎고 다듬을수록 처음의 모습과는 다르게 새로운 느낌으로 변모하여 다소 멋스러워질 수는 있겠으나, 지금 여기, 나의 초점은 그 ‘멋스러움’에 있지 않으므로, 한껏 편안하게 읽힐 글을 내어볼 작정이다.
파동의 이야기를 한 까닭은 다름이 아닌, 오늘 낮에 수줍게 뜬 브런치스토리 알림 하나가 의미심장해서다.
최근 들어 안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더욱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는 것이 강렬하게 느껴져서 ‘써야겠다.’ 마음을 먹은 뒤로 브런치스토리 아이디를 하나 만들고는 또바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게임 캐릭터가 기를 모으는 것처럼 나는 단지 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라며 독이 되는 달달한 회유도 스스로 좀 해 보고, 다시 시일이 지나 브런치스토리에 로그인을 해서 프로필도 이리저리 만져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글을 쓰나 구경도 해 보고……. 글을 쓰는 행위만 빼놓고서 모든 걸 다 하고 있던 중에 어떤 분이 글이 하나도 없는 나를 구독하기 시작했다는 알림이 떴다.
이 빈 공간을 과연 어떤 분이 구독해 주셨는지 살펴보니, 일전에 읽은 적 있던 관심 가는 글을 쓰신 작가님이셨다. 마침 당시에 자주 생각하던 주제인 ‘작가는 뭐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메인에 소개된 작가님의 글을 타고 가서 다른 글도 조금 읽다가 구독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잠시 구독 버튼을 눌렀다가, 또 구독자 리스트만 쌓여가는 건 아닐지 스스로를 우려하는 마음 반, 가두는 마음 반으로 다시 구독 취소를 누른 적이 있다. 아마도 구독을 취소했다는 알림은 따로 가지 않아서 ‘맞팔’의 의미로 구독을 눌러주러 오신 게 아닐까 싶었다.
안에서는 점점 목소리를 내서 세상에 들려주라고 하루하루 더욱 강렬하게 차올라 가는데, 나는 오래도록 무기력과 함께해 온 사람인지라, 이 나의 게으르고 무력함에 절여진 몸은 꾸준히도 내 목소리를 가리려 계속해서 잔뜩 무겁고 활력이 없기만 하던 중이었다.이 느낌은 한때 지긋하리만치 나를 침잠하게 했던 마음의 병의 증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때는 미처 다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이 있었고, 지금은 아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모처럼의 달콤한 휴일에 한없이 가라앉은 몸으로 들숨과 날숨으로만 온 하루를 보내려 하고 있었다.
'오늘 딱 글을 쓰면 좋겠는데…….'
그렇지. 생각만 했다.
'지금이야. 어서 와서 한번 써 보는 게 어때?'
라고 말을 거는 듯 알림이 떴다고 하면 거짓말 같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거짓말이 아니다.
그 무겁고 축 처진 몸도 단번에 일으켰다. 십 대 이후로 이불을 발로 차 본 적이 몇 번 없는데, 이불마저 발로 힘껏 차서 걷어내고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래.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단 한 번도 어려웠던 적이 없다. 내 안에서 무엇이든 가득 차 넘치려 할 때면 언제든 수위를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토출구였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더욱 이 행위를 지속했어야 했다. 나의 안녕과 세상의 안녕을 위해서. 그럼에도 나는 매일 가라앉는 육신과 정신에 대한 패배를 거듭하며 간신히 연명만을 해 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무기력에 절어 하루하루 연명하는 자신의 꼴이 더는 보기가 싫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한참 길을 잃어 온 것 같은 꽉 막힌 기분을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물었다.
「이렇게 앉아서 글을 좀 쓰는 게, 힘이 많이 드는 일일까?」
「그래서 나는 하루 종일 이러고 있는 걸까?」
아니었다.
무기력의 원인은 다른 곳에, 그 무기력도 나의 쓰는 행위를 막을 명분은 못 되었다. 숱한 날을 관성으로 세수하고 양치하듯 나는 관성으로 무기력과 함께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깥의 아주 작은 힘이라도 더해서 이것을 바꿔 보는 일. 또 하나의 물결, 파동.
그간 지나온, 수많은 거칠디 거친 순간들도 생각이 났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내 안의 소리를 나만의 예쁜 접시에 잘 담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은.
오히려 나를 더욱 생기 있게 가꾸고 나를 소생시킬, 기쁨이 차고 넘치는 일이었다.
먹이 주는 행위를 금하고 아주 작은 힘을 더해 이 무기력과의 지난한 싸움을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나에게 와서 닿아 나를 깨운 물결처럼, 다른 이에게 또 가 닿아 숨을 불어넣기 위해 여기에 소생의 운을 떼어야겠다.
'딸깍' 눌러 주기만 하면 환히 온 방을 밝히는 전등의 전원 스위치처럼, '딸깍' 하고 알림을 울려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이 일으켜 주신 하나의 파동으로, 앞으로 또 제게서 퍼져나갈 물결에 마음이 가득 설렙니다.
다음에 발행할 글은 「파동」, 「나의 안녕과 세상의 안녕을 위해서」와도 이어지는 내용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