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은 개인이 찾아야 한다.
도착하니 새벽 한 시다.
연거푸 줄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교수에게 문자를 남겼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제가 까탈스럽고 머저리 같은 놈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방법이 없어 영상이 상영되지 않는다면 졸업을 못하던, 괘씸해 퇴학을 당하던 그 자리에서 드라이버로 당장 내가 설치한 부스 깨끗하게 제 흔적 없애고 내려가겠습니다. 주렁주렁 노트북에 달린 선들로 난잡한 그곳에 나를 도와주고 보러 와 준 분들에게 전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전 못합니다.
자취방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시렸다. 차 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한 밤. 전시가 끝나고 친구들과 해맑게 웃음 가득 돌아올 줄 알았던 그곳에 나 홀로 초췌하게 기어코 도착했다. 새벽 두 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려오는 길 내내 미로를 헤맸다. 디지털 영상들의 화질들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 학교에서 빌릴 수 있는 철 지난 DID(영상 따위를 출력하는 모니터)로는 아마 최선의 출력을 하기 버거웠지 않을까라는 희미한 물음만을 품었다.
풀어 말해보자면 모니터의 용량은 1L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영상에 담을 수 있는 용량이 1L를 넘기니 모니터가 그것을 담지 못했을 것이다. 압축 횟수나 줄일 수 있는 변수들을 줄이며, 계산을 이리저리 해보았을 때 총 5가지의 방안이 예상되었다.
이것도 정답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5개 중 하나를 출력하기 위해 렌더링(편집된 영상을 출력하는 행위)을 시작했다. 2시간이 걸린다.
전시 시작은 9시. 5개의 영상을 다 출력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타협안으로 여러 설정값 중 중간 사이 값 3개만 뽑았다.
숨 막히는 새벽은 지나갔고 푸르른 아침이다 3개의 영상을 USB에 담았다. 다시 기차역으로 거칠게 차를 몰았다.
종종 그때를 돌이켜볼 때마다 여지없이 오싹함이 차오른다. 분명 난 위험했다. 출발한 지 20분 정도 지나자 그렇지 않아도 어제부터 아파왔던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정말로 뇌가 뜨거워졌다. 열이 난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처음으로 겪어보는 뜨거움이었다. 웃통수 그러니까 정수리 안 쪽에 뇌가 미친 듯이 뜨거워졌다. 내 정수리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는 펄펄 끓는 물을 그 구멍으로 콸콸콸 들이붓는 듯했다. 머리는 터지려고 하고 시야가 흐려지고 메스꺼웠다. 차를 길가에 급하게 멈춰 세우고 차문을 박차고 나오며 길바닥에 구토를 했다.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나올 것조차 없었는지 소리만 꽥꽥 울분을 다 토하고 나니 다시 한번 뇌가 녹을 듯한 뜨거운 통증이 왔다. 손발을 시작으로 전신이 미친 듯이 경련을 했다. 푸르른 새벽 시골길 한복판에서 나는 쓰러졌다. 엄마가 데리러 와 날 강제로 집으로 데려갔다. 지금 당장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고집을 부렸지만 엄마는 내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집으로 날 옮겼다. 집에 와서도 구토와 머리에 뜨거움은 끊이질 않고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리곤 기절했다.
이때 퓨즈가 나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다. 나는 아마 내 신체가 부르짖는 경보를 무시한 채 기차를 타러 갔다거나 했다면 난 분명히 쇼크가 와서 병신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후 아무렇지 않았다 하기엔 기억력 부분에서 아주 거하게 망가져버리기도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전화가 울린다. 시간을 보니 서너 시간 기절해있었나 보다. 여럿 연락이 와있다.
-어떻게 됐어?
-어디야
-전시 시작이야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나 보다. 공동체에도 떨어져 나간 나와 같은 문제가 다수 발생했다. 그들은 영상 마지막까지 재생해보지 않고 중반을 훌쩍 넘어 잘 나오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넘어가버린 안일히 실수를 저질렀다. 전시 시작 전 새벽 내가 어디선가 구토를 하며 길거리에 처박혀 있을 때 마지막 영상 체크를 하러 모인 3층의 다수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제야 공동체 속 개인들은 자신의 문제로 직면해 피해가 올 것이 자명하기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수시간에 걸쳐 여럿 머리를 맞대어 해결이 되었다 전했다. 해결 방안을 내게 알려주었다. 내가 생각한 문제점이 맞았다. 여럿 압축방법과 용량의 문제였다.
이러이러한 것들이 문제였다 라며 해결책을 내게 전하는 공동체들에게 섭섭하지 않았다. 그것이 사회고 세상이니까 오히려 진심으로 해결이 잘 되어 다행이다. 나하나 망하는 게 낫지 너희들까지 다 망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들도 그들이 보여주고픈 무언가를 그들이 애정 하는 누군가들에게 보여주겠단 희망 하나로 여기까지 해쳐 나왔을 거니까.
정신을 차리자마자 씻지도 않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실었을 것이다 사실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가는 길에도 퓨즈가 끊겼나 보다.
전시장 외각 건물에는 전시에 대한 현수막이 건물 한쪽 가득 채워져 있고 건물에 다가갈수록 환해진 얼굴들과 한껏 멋들어진 옷을 입은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보였다. 1층부터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다들 힘들어 보였던 요 며칠 상간의 얼굴은 행복한 얼굴로 뒤 바뀌어 있었다. 나만 빼고 말이다.
그들 틈에 외로운 개인으로서 초췌한 몰골로 벙거지 모자에 덜덜 떨며 바닥을 나뒹굴어 묻은 채 털어내지 못한 흙 자국들이 가득한 롱 패딩을 입고 다시 내 자리로 왔다.
가방을 열어젖혔다. 한쪽엔 충전된 전동드라이버가 있다. 퇴학 정학 그건 더 이상 내 알바가 아니다.
다른 한쪽 주머니엔 USB가 있다. 내 최후의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모이기 전에 지금 당장 내 앞에 모니터를 뜯어버릴 것이다.
첫 번째 파일. 안 나온다.
두 번째 파일을 실행했다.
그동안 내가 왔다는 소문이 어느새 난 건지 여럿 후배들과 동기들이 어느새 모여 함께 지켜봐 주었다.
10초.. 30초.. 1분... 5분. 마지막 엔딩까지 끝까지 잘 나온다.
-씨발..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안도, 울분, 원망 복합적인 모든 것을 한 단어로 품어내기에 그만한 단어가 없다.
난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다. 날 꼭 안아주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답은 개인인 내가 찾았다. 공동체는 개인을 위해 그런 모색 따위 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난 졸업전시를 마무리했다. 개인은 굳건히 설 수 있었고, 다시금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들어섰다.
분명한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그 자리에서 공간을 분해해버렸어도 나 하나 공백은 공동체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전혀 방해 따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공동체들의 전시 뒤풀이에 꽤나 씹을만한 안주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선배? 형? 오빠? 안됐다.
-아니 그래도 철수해버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아냐 아냐 나라도 그랬을 거 같아
-이기적이야
별의 별소리로 구운 지 한참 된 질긴 오징어처럼 잘근잘근 씹혔겠지.
공동체라는 집단이 배척되어버린 개인에게 적극적 도움을 주는 것은 개인의 피해가 곧 그들의 손실과 적극적으로 연관되어있을 경우뿐이다. 비정한 현실이다. 공동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공동체는 개인들이 모인 임시 집합체 정도일 뿐이란 것이다. 소속감도 좋지만 그에 앞서 그 안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굳건히 서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답은 결국 본인 스스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