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2)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건 위로뿐이다.

by 이선

진작 며칠 시간 동안 내게 다시 한번 내려가 영상의 잘못된 점을 확인할 시간이라도 줬어야 할 것 아닌가? 이것이 빌어먹을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인가.


내일 전시 준비를 잘하자는 말과 함께 교수는 떠났고 며칠 함께 고생했던 동기들과 후배들은 내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진실된 측은함과 동질감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였더라도 다른 이가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내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따위의 썩어빠진 이기적 안도감 따윈 끼어들 틈 없이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우리는 알았다. 졸업전시란 것이 관람객들에겐 단지 몇 분 짧게는 몇 초, 순간의 지나침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본인에겐 그 순간이 얼마나 값진 순간인지. 모두가 화려한 작가를 꿈꾸며 대학에 들어왔겠지만 세상은 그리 녹녹지 않고, 다시 전시의 기회를 얻게 될 일은 희박하다. 걔 중에서 몇 특출 난 재능, 재력 또한 든든히 받쳐주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란 것을. 지금 이 전시를 잘한다고 나라에서 상을 주고 작가로 등단되는 일 따위는 없지만, 적어도 밥벌이 힘들다는 예체능 대학교에 꿈 하나로 돈을 가져다 바친 4년 결실의 향 정도는 맡아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해답은 그 누구도 주지 못했다. 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공동체에서 내팽개쳐진 개인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그렇지 뭐.


역시 공동체란 개인의 이익이 교집합 된 임시 집합체 따위일 뿐이다. 나에겐 선택이 남아있었다. 이대로 포기하던가.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에 내 마지막을 걸어다 보던가.


결심이 섰다.


J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침울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집에 들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 준비를 하는 며칠 상간 서울에 연고가 없던 촌놈인 나는 연인 자취방에 머물렀어야 했었고 그녀에게 말없이 내려가는 것은 그녀를 배신하는 것과 같다. 터덜터덜 곧 쓰러질 듯 반지하로 내려가 현관문을 여니 그 사람 역시나 며칠 동안 내 전시 준비가 순탄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해결 잘됐어?

-나 내려가려고

-음… 방법은 찾은 거야?

-아니, 근데 시도는 해보려고

-가능성은 있어?

-없어.


사실 노트북에 모니터를 연결하는 등 기타 상영하는 방법은 있었지만 그 짓거리는 강박스러운 내가 생각했을 때 결단코 올바른 마무리가 아니었다. 좁아터진 공간 다시 노트북을 올려둘 장소를 설치하고 주렁주렁 선을 연결한 채로 난잡하게 끝마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날 도와주고 보러 와 준 수고로움을 마다하진 않은 자들에게 할 짓이 아니다. 그건 아니다.


- …

안쓰러운 듯 J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녀야말로 내 전시를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다. 비바람을 맞아가며 한강을 돌아다니기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말 그대로 가로지르며 수많은 곳들을 함께 했고 도와주고 내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그 전시는 나 혼자가 아닌 J와 함께한 우리의 작업이었다.


타협 불가능한 가장 큰 이유다.


잘 안되더라도 괜찮으니까 조심히 다녀오라는 J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터벅터벅 기차역을 향해 나섰다.


모두가 내일 다가올 전시를 그리며 행복감과 설렘을 가득 품은 채 고단한 전시 준비를 마무리하는 나른한 밤. 수십 년 전시를 진행했던 교수도 모르는 오류를 찾기 위해 홀로 어두운 밤을 나섰다.


가능성은 희박했다. 어떤 문제이지 않을까 따위의 실마리조차 없었다. 단지 여러 가설들을 세우고 그에 맞춰 해결방법을 찾아 헤매는 것 밖에 안되었지만 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수장이나 공동체는 절대 나에게 해답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고 못할 것이다.


확신은 없었다. 무모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설 순 없다.

어차피 해결은 내가 해야 한다.


내 몫이다.


공동체에서 배제되어버린 내가 다시 저 이익의 집단 속으로 들어가려면 온전한 나 개인으로 굳건히 서있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짧은 세월 불변의 법칙이었다.


장거리 연애 탓에 수없이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한밤 중 기차는 처음이다.

그녀를 만나러 올라가는 창 밖은 계절마다 색색의 풍경을 보여주었지만 그날의 기차 밖은 칠흑이었다. 빛 한점 없다. 단지 창에는 검은색 벙거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내가 보인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창에 비친 내 눈가는 도착역에 다다를 때까지 마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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