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나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이지만 오롯이 나 홀로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다 자만하는 오만방자한 놈은 아니다.
개인인 나는 분명 나약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집단에게 의지할 날도 부지기수 일 것이다. 그럼에도 공동체 속에서 나 '개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집단은 곧 개인들의 이익 추구를 위한 임의적 동맹체이므로 구성원 개개인 자립성을 확립하지 않고는 그 이익이 맞물리는 집단 속에서 온전히 버틸 수 없다.
내가 다닌 학과는 매년 졸업전시를 했는데 전국에 그렇게 많지 않은 과에 좋은 교수진 덕분인지 후미진 시골에 박혀있더라도 재학생 대부분이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들이다. 그런 자부심 또는 자존심인지 학과는 서울 꽤나 멋스러운 곳에서 매 해 전시를 했고 그 해는 내 차례였다.
층별 마다 담당교수님들의 학생들로 나눠진다. 영상 전시를 하는 나는 3층이었다.
인생 마지막 핑계인 대학이란 간판을 걷어치우고 나아가야 하는 풋내기인 우리들은 대단한 작가들도 아니었다. 때문에 한 층의 정해진 공간을 인원 별로 나눠 학생들끼리 직접 함께 가벽을 세우고 이전 전시자들이 메꾸지 못한 벽들을 메꾸며 벗겨진 부분을 다 같이 페인트 칠했다.
이 과정은 마지막을 거창하게 장식하는 부족의 그럴듯한 의식 준비 같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친근감들이 몽실몽실 솟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단체는 결국 개인의 전시를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적 동맹이다.
나는 무언가를 보여야 하는 학과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왜 보여야 하는지 졸업을 목전에 앞둔 시점까지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전시를 진행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기에 살아갈 인생의 출사표 따위를 꽤나 열심히 준비했다. 지금 보면 투박하기 그지없는 허점투성이 영상이지만 분명 그 안에는 이리 살아갈 것이다. 부르짖는 내가 있었다.
더군다나 가뜩이나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시골 촌뜨기의 어설픈 전시를 기꺼이 보러 와 주는 당신들의 수고로움에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전시 준비는 전시 시작 삼 사일 전부터 진행되었고, 가벽을 세우며 페인트 칠을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의 전시를 상영할 영상 모니터들이 속속 도착했다. 설렘과 긴장감이 3층을 가득 채웠다.
난 한 번도 인생이 쉽게 풀린 적이 없다. 영상 준비를 시작하는 첫날부터 오직 내 영상만 나오지 않았다.
나의 전담 교수님은 이 학과를 다니며 가장 애정 했던 교수다. 사물을 다르게 보며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주는 색다른 수업을 했고 꽤나 진정성 있게 강의를 임하는 모습에 그가 개설한 강의는 4년 내도록 빠짐없이 수강했다.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영상이 안 나옵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걱정 말고 모두의 전시니 그것을 우선적으로 준비하죠.
꼬불머리에 언제나 느긋하게 말하는 그는 이번에도 별일 아닌 듯 넘기고는 뒤이은 전시 준비 일정들을 나열했다. 그는 분명한 사소한 문제라 말했다. 있어왔던 문제라 말했다. 풋내기인 나는 3층 공동체를 이끄는 수십 년의 영상 경험을 가진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전시 날짜가 수차례 다가오며 나를 보러 올라와줄 사람들의 연락이 하나둘 씩 쌓이고, 재생되지 않은 영상은 무섭도록 날 짓눌렀다.
전시 전 날. 모든 이들의 설치를 나의 것처럼 도왔다. 뭐가 되었든 수년간 같은 학교 같은 과라는 소속 집단 아래에 모인 그나마 나와 비슷한 '우리'들의 마지막이니까.
시간은 저녁 8시다. 영상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다. 지직지직 끊기고 싱크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영상이 멈춘다.
-교수님 영상이 여전합니다.
-그럼 해결방법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그의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까지 방법을 강구해보죠.
순간 그 교수의 꼬불한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을 양손에 쥐고는 뜯어버리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