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흡연자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피해는 너만 입으렴.

by 이선

단언컨대 겨울은 완벽한 흡연의 계절이다.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입김일까 속에 타들어갔던 담배 연기일까 작게 벌려진 입술 사이로 내뱉어지는 연기는 다른 때와 달리 두 세배로 내뱉어지는 것이 시린 손을 부여잡고 피우는데 이만한 계절이 없다.


근래 눈에 띄는 광고가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금연 캠페인으로 나오는 '네가 노담(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이었으면 좋겠어!'라는 광고인데 청소년들이 흡연을 하는 친구나 지인에게 진심 어린 걱정으로 회유하는 내용이다.


오지랖도 넓다. 개인 또는 개인이 속한 어떠한 집단에게 동기를 부여할 때는 도덕적 우월성을 높이 사주면 된다. 그것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해준다. 광고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다들 흡연하러 가버려 혼자 남더라도, 형이 피우더라도,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난 담배 따윈 피지 않아. 의지 하지 않아! 라며 '노담'에 은근한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는 듯 보이는데 그게 내 눈엔 썩 유쾌하지 않다. 언젠가 부모남에게 담배를 피우는 나를 왜 나무라지 않느냐 라고 물으니 그들이 답했다. '니 몸으로 네가 피겠다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한들 피우지 마라 해도 피울 것이고 네가 안 피울 요량이면 피워라 해도 안 피울 건데 말을 해서 뭐하니'


이런 가정 덕에 저런 사회도덕적으로 불순한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국민 다수의 건강은 곧 세금 징수의 원천이고, 나라의 자원이기에 금연 학교와 금연 프로그램들이 즐비해있을 것이다. 절대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온전히 기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실로 가능했다면 애초에 담배란 것의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어야 할 것이고, 그것조차도 불가능하다면 담배의 독성물질들을 수십 년간 천천히 줄여나가 지금쯤이면 독성물질은 거의 없는 무늬만 담배 같은 것들로 남아 있어야 되지 않을까 같은 망상을 해본다. 담배에서 나오는 손익은 상충되기 마련이다. 애매한 위치에서는 애매한 결단 뿐이다.


담배의 해로움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흡연자들의 장기 사진들을 담배 외곽에 붙이는 정도라던가 가족들 곁에서 넌 쉽게 떠나갈 거다 라는 문구 따위로 개인의 감성을 건드리는 정도. 너의 선택으로 인한 흥망성쇠는 네가 정하란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무언가를 변화시키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자그마한 동기 정도 뿐. 모두 알다시피 완벽한 변화는 오로지 개인이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언제까지고 오냐오냐 기다려주는 존재가 아니다.


최근 밤길 어두운 길거리를 지날 때. 갑자기 구린내 나는 담배 연기가 내 마스크를 뚫고 대차게 들이닥쳤다. 숨 참을 준비조차도 안 돼있던 나는 쿨럭쿨럭 소리를 내고 눈살을 찌푸리며 옆을 돌아더니 게슴츠레 뜬 눈, 벌겋게 닳아 오른 얼굴에 마스크는 어디 갔는지도 없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얇은 패딩을 입은 그의 발 앞. 그러니까 내가 딛고 있는 땅에 그가 담배를 피우며 뱉어 놓은 가래들과 담배꽁초가 지천에 널려있었다.


눈길을 그에게 보내니 그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내게 달라붙어 아니꼬운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이미 맛이 갔다. 더 이상 이 술과 담배냄새에 쩌든 이와 엉켜있다간 다가올 22년 액땜을 지금 해버릴 것 같아 애써 무시하고 지나가버렸다.


-지랄하네


그는 말과 함께 연인이 선물해준 내가 애정 하는 회색 바지에 자신이 핀 담배꽁초를 툭하고 던졌다.


내게 던졌던 꽁초를 곧장 주워 들곤 곧바로 달려가 그를 아스팔트 바닥에 고이 뉘이고는 그 친구의 얇은 패딩 주머니에 담배를 지져 넣었다. 상황이 일단락 되고 자리를 급히 피하는 그의 옷에도 내 옷에도 그가 뱉은 가래, 담배꽁초들 자국이 자욱하다.


단언컨대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식으로 자신들 편한 대로 길거리 모든 곳이 자신의 침 뱉는 오물 받이며 하수구는 담배꽁초를 버리는 재떨이인 이상 그들의 권리는 앞으로 무시되면 되었지 존중받는 일 따윈 없을 것이다.


흡연자들이 그들의 권리가 찾아지길 원한다면 지금 제공되어있는 흡연 시설을 철저히 지키고 흡연 공동체가 스스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권리의 부르짖음에 무게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메아리 없는 외침만 반복될 것이다.


개인이 합법적 구매가 가능한 (물론 청소년은 구매가 불가능하다.) 기호 식품을 스스로 선택하는데 사회가 어느 선까지 제재와 회유를 일삼아야 할까? 하얀 담배 개비 하나로 무거운 고민이 사라지지 않는 것 따윈 알지만 담배 불 타들어가는 그 몇 분 동안 우리는 꽤나 많은 위로를 받는다.


엄연히 세금을 걷고 우리 주머니에 넣고 다닐 물품 중 손에 꼽게 구매하기 용이한 물품이라는 현실에서 노담이었으면 좋겠다 보다 '난 네가 흡연자여도 상관없지만 그 피해는 너만 입었으면 좋겠어'로 변하길 원한다.


그것은 당신들만 고통받고 다쳐라 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에게도 불법이 아닌 이상 피울 권리라는 것이 있다. 그들이 얼마나 피우고 싶은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개비 하나에 의지 하는지 안다. 겨울 모락모락 나는 담배 연기를 보면 그 옆에 서서 한 모금 깊게 삼키고 싶은 욕구가 여전한 나 역시도 흡연자였고 애연가였다.


금연에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는 것은 분명하건대 잘못되었다. 흡연은 국가가 부여한 세금을 마땅히 지불하며 선택한 그들의 합법적 기호 행위이므로. 흡연 태도를 올바르게 상기시키고, 그것이 곧 그들 공동체에게 마땅한 권리가 부여될 것이란 것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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