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그게 뭔데?

가지지 못했고 가지지 못할 감정

by 이선

반 알 짜리 흰색 알약 없이는 여전히 푸르스름한 하늘이 보여야 잠에 드는 여전한 그런 사람이다.

편안한 밤을 선사해준 신경정신과에 간지도 벌써 2년이다. 일주일이 두 번 돌면 하얀 알약은 떨어졌다. 장 자크 루소와 호메르스 정유정의 책들 위에 무신경하게도 둘둘 말려진 약봉지들이 빠짐없이 내 뱃속으로 들어가고 헐렁이는 빈 봉투만 남아있다. 다음 날 여지없이 약을 받으러 갔다. 하얀 얼굴에 나긋나긋한 목소리인 원장은 굉장히 친절하다.


그동안 기분은 어땠나요? 식사는 어땠나요? 기분이 울적하거나 나빴던 적은 없나요?


그가 영업을 잘하는 것이던. 그의 직업적 소명의식이 투철한 것이건 간에 상투적 질문은 2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그에게서 나를 대충 대하고자 하는 귀찮음이 보인 적은 단언컨대 없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과는 반대로 그의 직업에 걸맞게 나를 돌아보게끔 송곳 같은 질문을 종종 정수리에 박아 넣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열등감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갑자기? 열등감?


수많은 기억들을 뒤적거렸다. 내 기억의 파노라마를 타고 타고 내려갔다. 내가 느껴봤지 않았을까?

응당 인간이라면 그런 감정이 없을 리가 없다. 찾아보라며 찰나의 시간 나를 나무랐다. 그래 맞다. 아주 어린 시절은 있었던 것 같다. 팽이 놀이가 유행이던 꼬마 시절 한 친구가 가진 팽이 저 친구가 가지고 있으니 나도 가지고 싶다며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을 뒤적였지만 그것 말고는 도저히 찾지 못했다.


없다. 나는 열등감이란 감정이 없다. 오 년 아니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도록 가뭄에 콩나듯이라도 느껴보았다면 부족하다는 말은 어울렸을 법했지만 도저히 내 저수지에 떠오르지조차 않은 감정이다.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없어요. 도저히 없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선생님은 타인과의 경계가 어떠신 것 같아요?


-높고 두터워요. 혹시 열등감이 없다면 나쁜가요?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죠? 한번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거예요. 지금 선생님은 자신을 들여다봐도 되는 시점까지 왔으니까요.


두툼한 약봉투는 주머니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볼썽사납게 한 손에 대충 쥐어 잡고 터벅터벅 돌아왔다.

열등감 그놈의 단어가 하루 종일 내 머리를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연인에게 물었다


-A, 열등감은 어떨 때 느껴?


그녀는 단숨에 답했다.


-그야 누군가가 좋은 소식이나 부러운 것들을 손에 거머쥘 때 나는 그것을 못 가졌으니까 그때 느끼지 않을까?


나의 사고는 참 지랄 맞게 단순하다. 누군가가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 온다. '오 잘됐네!' 여기서 사고의 단절이 일어난다. 그 이후가 없다. 그것은 그에게 잘된 일인 것이지 내가 잘된 일이 아니다. 단지 그가 나와 관계되어있기에 그가 좋겠거니 싶어 그에게 동조를 하는 것일 뿐이다. 연인에게 내 사고의 단절을 말하기 전까지 그 후에 어떤 생각이 들어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남을 질투하고 부러워한다고 내가 가지지 못한 무엇에 어떠한 감정을 느낄지언정 그가 가진 것을 내가 얻을 리 만무하다. 쓸모없는 생각 소모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너는 너. 나는 나.


가끔 인간에겐 일생동안 정신적으로 쓸 에너지의 총량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지천에 널려있던 에너지는 은밀하고도 과감하게 줄어갈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릴 때는 든든하던 내 창고가 황량하게 변해버려 조금 남은 에너지를 지키기에 급급해질 때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난 그 에너지를 일찍이 그리고 너무 많이 당겨 썼다. 내 기력을 담을 그릇은 한없이 작아져 지금은 겨우 간장 몇 술 담을 종지 밖에 되지 않는다. 그곳에 타인을 담을 공간은 없다.


열등감이 없는 것은 다른 이와 비교할 건더기조차 없다는 거만한 생각이 아니라 나와 싸우기 바쁜 탓에 타인에게 갈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평생을 불안과 살아야 했던 나를 돌봐야 할 존재는 오직 나뿐이었다.

누구도 손길을 내밀지 않았고, 10살의 아이가 서른을 목전에 두기까지 나는 나를 돌보며 내가 무엇을 해야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을지에 대해 수없이 몸으로 마음으로 터득했다. 그 짓거리는 대가에 비해 굉장히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진 정신 재산을 나를 지키기 위해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언젠가 그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불안 덕분에 나는 쓸모없는 에너지 소모를 질색한다.


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쓸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내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내가 그릇이 작았건, 아니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렸든 간에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