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놀아요. (완)

책 왜 읽어요?

by 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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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며 가장 자발적으로 많이 한 짓은 단언컨대 책 읽기다. 부모가 책을 좋아하지도, 나를 보며 책을 읽어라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냥 손에 잡혀 읽었을 뿐이다. 대부분 좋아한다는 일은 다 그런 셈이다.


가뜩이나 없는 친구 덕에 학창 시절도 친구들과의 그럴싸한 추억보다 책과의 추억이 대부분이다.

성인이 되고도 파트타임 일하기 전 두 시간 미리 서점에 나와 책을 읽었고 퇴근 후에도 서점 문 닫힐 때까지 책을 읽었다. 어느새 그 지점 직원들은 날 모두 알아보는 지경이었고, 한 달에 대략 20만 원 정도씩 꼬박꼬박 책을 샀던 것 같다.


그래 나는 분명히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 사랑한다.


짙은 종이 냄새부터 첫 장의 설렘과 마지막 책을 덮는 아쉬움. 그리고 며칠 상간에 내 손자욱이 가득한 녀석을 다시 책장 속으로 넣는 그 순간. 그동안 내 손길을 거쳐갔던 녀석들 사이로 새 녀석이 슬그머니 동화되는 포만감은 내게 안식을 준다.


책을 사는 행위 또한 빠질 수 없다.


나만의 철칙이 있다. 새로운 책에 대한 정보를 알았다면 며칠 동안 내가 사고 싶어 하는 책을 그 서점 안에서 마지막 장까지 다 읽는다. 완독을 다한 책을 그 자리에서 사지 않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 그 녀석이 생각날 경우 그제야 산다. 결론적으로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한번의 완독이 끝난 책이다. 또한 절대적으로 책은 직접 사러 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절대 배송으로 책을 받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나에게 묻고 싶지만 재고가 없다면 쉽사리 요청하지 않고 한 달을 매일 서점에 출근해 꼬박 기다린다. 그래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때서야 재고 요청을 해 구매를 한다. 1XX번 버스를 타고 서점에 가까워질수록 재고가 있을까 없을까. 그 확률의 아슬함이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토박 토박 서점까지 뛰어간다. 혹시 아는가? 내가 앞으로 수없이 읽고 아껴줄 그 책을 단 몇걸음 차이로 누군가가 구매해 나와의 만남이 멀어질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어쨌든 난 몰입 또는 공감을 잘하는 인간이다. 지인들이 들었다면 소스라칠 일이지만 드라마던 영화든 나는 참 뻔뻔스럽게도 잘 운다. 너와 나를 바꿔보는 행위를 즐겨한다. 내가 당신이 되었다 믿는 망상은 그들의 삶에 나를 투영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주위의 인물들은 한정되어 있다. 반대로 활자 속 인물은 끝이 없다. 또한 활자를 기록한 인물도 끝이 없다.


한 권의 독서로 얻는 최종적 목표는 수백 장 속에 서술된 긴 문장들의 연속에서 함축된 저자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는 소설 속에 자신의 복제품을 삽입한다. 그것은 저자와 동화된 인물이기도, 반대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것에 반하는 자로 등장할 수도 있다. 내가 모자란 탓인지 소설 한 권의 책을 단 한 번 읽는다고 절대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네 번 다섯 번 길게는 열 번을 읽어야 그제야 완벽에 가까운 동화가 이뤄진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추측에 머물러선 안된다. 인물이 곧 내가 되어야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라는 확신을 느껴야 한다.


책은 한 인간의 히스토리 범벅이다. 그렇기에 동화란 것은 당연히 소설이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다. 인문학 또는 종교 철학과 같은 경우는 책 속에서 대변해줄 인물이 없기에 여러 번의 책을 읽으며 그 '저자'에 집중을 한다. 저자는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어떠한 역사적 사건 속에 있었는지 그의 생각이 왜 대쪽같이 유지되는지 또는 휙 하고 변해 버렸는지를 말이다. 대체로 그렇게 바뀌어가는 것은 전쟁, 냉전 또는 사회적 핍박 기타 여러 굵직한 인류사 속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렇게 하나둘 그의 생을 정리하며 그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가 그토록 책 한 권 속에 부르짖고자 하는 말을 찾아낼 수 있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가 저자와 동화되어
숨겨진 그 한마디를 발견하는 것. 동화의 몰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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