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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Jan 13. 2022

내 그리 정은 내지 않는다만

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

 내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 당신들의 마음 죽어나 깨나 모르겠지만 분명 당신들도 내가 아니니 내 마음을 다 알진 못할 겁니다


아부지요 아부지요 당신이 그리 조르고 졸라도 왜 당신을 그리지 않았는지 가늠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주름 하나 덜 그리려고 하니 당신의 예전이 보이고 그대로 그리려 하니 지금이 보이고 무심코 늘어난 획에는 노인이 된 당신이 보여 그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몇 번을 뒤엎었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늙어가는 것을 보는 것 그거만큼 참 기분 뭣 같아지는 게 없습니다. 천고의 법칙이라지만 그래도 착잡한 건 착잡한 거니까요.  


 아부지요 내는 서울이 참 싫습니다. 내한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디 그냥 서울이 싫습니다. 그저 내가 이뤄내고 싶은 것들이 다 이 좁은 서울 땅덩어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가끔은 한스럽습니다. 복작스러운 지하철, 끝을 모르고 솟아있는 건물, 그 너머 채 옳은 방한칸 너비도 안된 방들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답답한 도시.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겠지만 내게는 왜 그리 정나미 없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촌놈이라 그런가 보다 생각을 멈춥니다.


 원래 뭣도 아닌 놈이 똥줄 나게 바쁜 법 아닙니까. 아직 옳은 놈이 덜 되었는지 하는 일이고 준비하는 일이며 콩내끼 돈 몇 푼 안 되는 일뿐이다만, 그저 당신들 얼굴 하루라도 더 보려 바짝 옷소매 가다듬어 일을 헤쳐 놓고는 두어 달에 꼭 한 번씩 기차를 타고 내려갑니다. 몸을 싣고 서울에서 차츰 벗어날 때면 점점 낮아지는 건물들만큼 위태롭던 내 마음도 금세 평안해집니다.


 저기 기차역에서 내려 오래간만에 보는 익숙한 지하철 역 하나하나 읊다 보면 금세 당신들에게 가까워집니다. 막창 집이 없더라도 하늘을 가려줄 감나무가 보이지 않더라도 시퍼런 초록 철문이 쾅 닫히지 않더라도 괴상스럽게도 삐쭉 솟은 그놈의 건물이 내 눈에 들어올 때면 그렇게 마음이 나긋해집니다.


 쉬러 가는 입장이라지만 실은 그리 쉬기 좋은 곳은 아닙니다. 두사람 다 귀가 어두워질 만한 연배인지 티브이 소리는 귓구멍을 아무리 막아놔도 뚫고 들어와 연신 내 정신을 어지럽히고 아직도 온종일 투닥거리는 당신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편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그곳은 내 집입니다. 내 쉼터입니다. 서울 한복판 내가 머무르는 다섯 평도 안 되는 이곳에 살아있는 것 이라곤 아직 쓸모없는 몸뚱이 하나랑 잎사귀 넷짜리 몬스테라 하나.여긴 내 집이 아닙니다. 그건 내가 이 비싼 땅덩어리에 으리으리한 집을 지니고 있어도, 처자식이 생겨도, 당신들의 나이가 되어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내 집은 오직 당신들이 머무르는 그곳입니다. 당신 집이 당신 이름으로 안 되었다며 온갖 푸념을 던질지 언정 내게는 당신들이 있는 곳이 초가삼간, 굴다리 밑이라도 곧 내 집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집'에 갑니다. 이젠 육십을 훌쩍 넘은 중년도 노인도 아닌 당신들과 새하얀 여섯 살 먹은 개 한 마리 보러 갑니다.


 아부지요

더 이상 늙지 마시오 마시오 빈다고 당신 늙음이 걸음을 멈춰주지 않덥니다.

 아부지요

더 이상 마르지 말고 살 좀 붙고 제발 건강하시오 한다고 당신이 작아지지 않는 건 아니 덥니다.


 그저 기차를 오고 가며 이놈의 기차나 세월이나 뭣이 그리 급한가 투덜댈 뿐입니다.

  

당신은 모를 겁니다. 매번 실없는 웃음 속에 당신들 모습 꾹꾹 눌러 담고 가려는 내 마음 절대 모를 텝니다.


아부지요 모든 걸 다 내어주게 해서 미안합니다.

 내캉 그래도 쪽팔리게 살지는 않겠습니다. 그거 하나는 약속하겠습니다.


 세월을 멈출 순 없겠지만 부디 천천히 같이 갑시다. 서두르지 맙시다.


같이 조금이라도 오래 있읍시다.


내는 제일 뒤늦게 당신들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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