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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Jan 11. 2022

서른에 게임이 하고 싶어 울었다.

쾌락을 포기했다.

 별안간 나이 서른 먹고 컴퓨터 앞에 머리를 박고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공들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비참한 결말을 느낀 것도 아니고요.

 단지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 나의 한정된 정신 자원을 다시 한번 깨닫고 울컥 눈물이 난 겁니다.  


게임하고 싶다. 


 주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쾌락(직관적 자극), 몰입, 삶의 의미 세 가지로 나눠지지 않을까 싶다. 셋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언컨대 몰입입니다. 기본적으로 삶 속에 의미로 밑바탕에 깐 채 '몰입'을 다듬고 다듬어 몰입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선 쾌락, 직관적 자극으로 심신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말을 그럴싸하게 하지만 그냥 일 할 땐 잘하고 놀 땐 잘 노는 삶 아닐까요? 


 분명 저 세 가지 것들을 적재적소에 따라 잘 사용하는 사람도 지구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난 절대 아닙니다. 아무리 합리화를 수천 번 시도해도 난 자극과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보통의 인간이 쓸 수 있는 내면적 자원이 사발 그릇 정도라면 난 종지밖에 안 되는 인간일 겁니다.


  1년 정도 전쯤 게임에 작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사실 이때도 종지 같은 나인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이란 게 꼭 아는 대로 행하진 않으니까요.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않을까? 나도 쉴 구멍이 있어야지. '

 삶을 방해하지 않을까 싶은 염려에 한 시간을 넘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전 저와의 약속에 굉장히 엄격한 사랍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몰입'이라는 순간에 게임 즉 직관적 자극이 슬며시 들어와 훼방을 몇 번이고 놓았습니다. 가냘픈 몰입은 순간에 달아났습니다. 온갖 정신을 쏟고 쏟아 만든 무아의 경지. 몰입을 쾌락이 아주 시답잖게 부숴버렸습니다. 그깟 쾌락 하나 때문에요. 

 

 그날 난 쥐 잡듯이 게임 사이트들을 찾아가며 모든 게임 계정을 삭제해버렸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쾌락과 자극에 굉장히 약해빠진 놈이란 것을 다시 한번 알아차린 비참한 날이었어요.



 오늘 할 일을 다 마치고 보니 푸르른 새벽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대규모 패치가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관련 사이트에 업데이트될 내용들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두근거립니다. 수면제도 먹어 몽롱한 정신으로 무의식적으로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습니다. 다운로드 바가 빨간불에서 주황 불 곧이어 초록불을 향했고 100%를 향해 다가갑니다.  


'이렇게 일 다하고 한 시간 정도는 괜찮잖아. 주말에만 하는 거야. 주말에 한두 시간 정도 평일엔 하지 말자' 

 합리화를 시도해봅니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내가 이 다운로드 바를 멈추지 않는다면 분명 쾌락이 내 몰입을 좀 먹기 시작할 것이고요. 종국엔 결국 몰입이란 걸 잊어버릴 겁니다. 


 컴퓨터 앞에 머리를 처박고는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빌어먹게도 쾌락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확해 소리 내어 꺼이꺼이 부르짖었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재미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 가지 않습니다. 유독 자극에 연약한 인간이던가 말한 것처럼 내적 자원이 종지 그릇 같은 놈이던가. 아무튼 이번 생은 즐기며 쾌락과 함께하긴 글렀습니다. 


다운로드가 완료되기 직전 애꿎은 컴퓨터를 발로 차며 전원을 꺼버리고는 씩씩 대며 잠에 들었습니다. 


나는 몰입과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자극을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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