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순서대로 정리해요.
어떻게 책 정리들 하시나요?
시답잖은 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 기회가 그다지 없어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때, 정확히는 책에 대한 소유욕이 생긴 시점부터일 텐데요. 사실 이 방법이 특별한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흔한 방법일 수도 있겠고요.
저는 읽은 순서대로 책을 정리한답니다.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틈이 있는 책장 하나하나 채워 넣다 보니 어느새 제가 읽어왔던 순서대로 놓인 듯 했습니다. 예상이 맞을지 검증이 필요해 저기 책장 가장 위쪽에 두터운 갈색 가죽 노트를 하나 꺼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새기고픈 구절들이나 그 책의 정수를 나름대로 추리한다거나, 작가와 나 또는 인물과 나의 공통점 차이점 같은 잡스러운 것들을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노트들을 차례차례 넘겨보니 제가 읽은 순서가 맞습니다.
높낮이, 장르, 작가, 선호도에 따라 어설프게 정리하던 습관을 버리고 그날부터 읽은 순서대로 차례차례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법은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내가 그 당시에 이끌렸던 흥미와 감정 서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가 뻔히 보인다는 겁니다. 책의 연속성이 곧 나입니다. 마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을 보는 듯합니다.
완성된 민주주의란 존재할 수 있는가 싶기도 했는지 그것에 대한 책들, 공리주의, 포퓰리즘, 전혀 나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골머리 아픈 이야기들로 책장이 오래도록 구성되어 있다가도 뜬금없는 질병이 인간사에 끼친 것들이 있을까 싶었나 봅니다. 스페인 독감, 흑사병 등 질병의 역사들을 따라가다가 곧이어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물음이 넘어가 책장 두 칸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삶, 그들의 산문집들로 수십 권이 이어져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산문집에서 당연스럽게 그들이 가진 생각으로 쓴 소설들이 줄을 잇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가슴이 몽글한 날이 있었는지 뜬금없게 로맨스 소설이 한쪽 구석 자리를 잡을 때도 있답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를 돋우는 점은 읽어도 또 읽고 싶은 애정 하는 책들은 유독 순서를 지키지 않고 앞자리로 금세 새치기를 해오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혼잣말로 '이놈은 뭔데 벌써 다시 앞에 왔어 저번에 읽었는데 '라며 다시 그 친구를 집어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합니다. 그 책은 결국 그렇게 평생 새치기를 할 겁니다.
사실 어디에 널브러져 있던 내가 사랑하는 책의 내음과 한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그럼에도 재미난 경험을 해보시고 싶으시다면 한 번쯤 해보시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여러분이 잊고 있던 시절 속 서사를 불러와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