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살아감에 거침이 없었다. 괄괄하게 자신의 히스토리 읊기를 좋아했다. 자신의 삶에 한낱 부끄러움 따윈 없는 그런 사내였다. 유약하며 결단력도 없던 그 시절 나에게 그는 슈퍼맨이다. 그에게 있던 여럿 단점마저도 사내의 떳떳함 앞에서는 흐려졌다. 내가 살아감에 있어서 저 사내의 발자취만 따라가더라도 나름 성공한 삶을 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동경이었다. 우리의 관계를 떼어놓고 객관적인 시각으로도 그의 부족한 부분을 잊게 만들만큼 그는 근사한 남자였다.
사내의 역겨운 치부를 알아버렸다.
그와 마주했다. 그의 치부를 슬그머니 돌려 던져보았다. 내가 알아차린 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그 사내가 담담하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 말을 받아치길 원했다. 삶의 모순은 잔혹하다. 기대는 대부분 엇나가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당황이란 삶에 존재하지 않았을 듯한 사내의 얼굴은 터질 듯 금세 붉어졌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윽고 화제를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마저 내게 비췄다. 그에게 떳떳함이란 가면이 벗겨졌다. 존경이 적의로 바뀌는 순간은 한순간이었다. 썰물이다. 존경을 모조리 쓸어가 버렸다. 이윽고 적의로 뒤범벅된 파도가 날 집어삼켰다.
어디서 쓰다만 공책을 펼쳐 글을 적었다. 왜 그가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그의 마음은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그의 역사가 있던 것일까. 그를 이해해보기 위해 그리고 넘쳐나는 적개심을 누르기 위한 위로였다. 인간의 대한 존경과 믿음이 한순간에 찢겨 나간 자의 분풀이다. 두서없이 적히는 글자에는 얼마나 세게 눌렀는지 연필심이 바스러진 자국들엔 내 울분이 고스란히 담겨도 있다. 내 책장 가장 위쪽 한편엔 그 노트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타인은 온전하게 믿을 수 없는 존재란 것. 다른 사람을 절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포용심과 이해심이 내 안에 자리잡기엔 그 사내의 치부는 너무 컸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쫓아가기를 마다하지 않던 인간의 가면이 벗겨지는 걸 보고도 난 그와의 관계를 잘 유지해오고 있다. 그 짓거리는 굉장한 피로를 유발한다. 이따금 그의 얼굴을 볼 때면 그의 대한 이해와 연민 분노 적개심 온갖 것들이 뒤섞여 날 어지럽힌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적개심을 고요히 은밀히 누르고 있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내가 그에게 한참 더 가까워지는 날. 당신의 치부를 알고 있다. 그리 말하기 위함이다. 복수가 아니다. 궁금에서 비롯된 내 다짐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을 것이다. 그는 뭐라 답할까 나 홀로 망상을 펼치곤 한다. 고개를 떨굴 것인가. 잘못된 사실이라며 뻔뻔스레 시침을 뗄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추잡스럽게 역정을 낼 것인가.
정작 때가 된다 한들 물음을 던질 수 있을까?
미래의 나는 세월에 길들여져 그를 이해하게 될까?
내게 강렬한 느낌표를 던져 주었던 사내는 사라지고
한낱 의문만을 던져주는 그저 그런 사내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