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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Jan 19. 2022

사람이 귀한 날이 올 것이다.

포노 사피엔스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해주셨던 말이 있답니다. 구절동화처럼 엄마는 나에게도 이 얘기를 종종 해줬습니다.  


'십리에 사람 하나 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갑고 귀하게 대할 날이 올 것이다.'


사명대사가 했던 말이라 합니다. 사실여부는 모릅니다. 진부한 인류멸망 시나리오의 줄거리 소개 같습니다만. 사람이 귀한 날은 올 것 같습니다. 이미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신경이 예민한 나 같은 사람은 볕으로 몸을 데워야 합니다. 굳은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뭉친 가슴을 활짝 피기도 하며 동네를 거닐다 보면요. 꽤 변했습니다. 서울, 제가 사는 지역으로 온 지 벌써 3년 정도 흘렀습니다. 출근에 용이한 지하철 노선에 집값도 저렴한 편이라 1인 가구가 무척 많습니다. 당연히 음식점들도 많습니다. 한데 꼭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역병이 오기 전에도 테이블이 없는 음식점. 말 그대로 조리 후 배달로만 수입을 내는 공간들이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공유 주방의 형태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손익을 따져봤을 때 가게의 규모, 인건비 지출을 줄이며 방역에 뒤따르는 손실도 최소화하기 위한 당연한 처사입니다만. 세상사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우리는 서로를 마주할 기회를 점점 잃어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재택근무가 늘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인류라는 뜻에 포노 사피엔스 (phono sapiens) 란 말까지 생겼습니다.

우리는 속으로 속으로 속으로만 들어가고 있습니다. 얇은 스크린 속으로 홀리듯 들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오프라인의 포화, 메타버스의 서막, 온라인 공간의 활성화 여럿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은 부가적인 이유이며 그저 어쩔 도리가 없는 세상의 당연한 변화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거니까요. 


 점점 더 개인의 영역은 뚜렷해지고 두꺼워지고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무작위에 누군가와 마주할 공간이 점점 좁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도 좁아진다는 게 아닐까요.


 교차점이 줄어들며 서로를 대하는 것에 인색해지는 야박한 존재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텍스트, 스크린으로만 서로를 인식하며 각자의 견고한 집단속에 속한 채로 다른 이들을 접할 기회가 없으니 서로를 미우나 고우나 이해해야만 했던 세상에서 내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나와 다른 개인을 이해하기 불가능한 세상 속에 놓인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을 쓰고있는 저 역시도 더불어 어울려 북적거리는 걸 질색하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지겨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람 구경 세상 구경하는 걸 참 좋아합니다. 가끔 사람들 많은 거리를 거닐 때면 사람들이 각자의 히스토리 속에 저마다의 그대들과 웃음꽃을 피우는 것들을 보면 여기가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싶답니다.


언젠가 먼 미래 인류는 각자 너무나도 멀어져 다시 서로와 부대끼고 살아야만 했던 불편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할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오늘입니다. 


 역병이 물러난다면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누워 해 질 때까지 실컷 인류애를 담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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