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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Feb 21. 2022

문래동

아버지 냄새가 난다.

 서울. 딱히 어느 곳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긴 서울이 날 밀쳐낸 것은 아닐 테고 낯가리는 촌놈이 여전히 서울 물이 덜 든 탓이겠죠.

 2년 전 촬영일로 문래 근방에 들릴 일이 있었습니다. 창작촌이란 게 있다고 하네요.

가는 길에 익숙한 기계소리가 들립니다. 조그마하게 철공을 하시는 분들 모여 계시고 그 덕에 임대료가 싸서인지 요즘스러운 카페들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아이러니한 조합입니다.  

 난 그래도 참 좋았답니다. 아! 전 커피가 좋았던 게 아닙니다. 쇳가루 먼지 가루가 코에 잔뜩 끼었는지 휴지로 콧구멍을 우악스럽게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좋았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리시는지 한숨과 함께 뻗어 나오는 그 고약한 담배냄새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싸늘한 쇠 냄새가 좋았습니다.

 그건 내 아버지 냄새거든요.

 

 길거리는 까슬까슬 얇은 쇳찌꺼기들이 즐비합니다. 그렇게 신발 밑창으로 요란스러운 철을 느끼면서 동네를 걷다 보면 한가득 퍼져있는 쌉싸름한  냄새가 도처에 진동을 합니다.

그 쇠 냄새라는 건 한두 해로 나는 냄새가 아니란 겁니다. 자욱이 수십 년 기계들과 사람들의 세월이 녹아든 냄새입니다.


   아버지의 공장에 유독 다른 남매들보다 자주 갔습니다. 남자아이라 그런지 종종 어설픈 솜씨로 돕기도 했는데 내게 그건 아버지이자  남자를 이해하는 아주 좋은 구실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손대지 않고 담배를 피울  있는지,   번씩 휘몰아치는 감정을 주체  하는지, 그의 이마나 목덜미의 상처들은  사라질 날이 없는지,  번씩 장갑을 휘감아버리는 날붙이 아찔함에 한숨을 내뱉는 그를 보며 평생을 이런 일과 함께 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겁니다.


 난 종종 문래에 갑니다.

나를 다잡을 때도, 향수를 느끼고 싶을 때도 말입니다. 지하철역에 올라와서는 전혀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지만 걷고 걸어 신호등 건너 창작촌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큼하게 묵은 쇠 냄새가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그건 정말 단지 쇠의 냄새일까요. 내겐 세월  전투를 치렀던 묵은내 같습니다수많은 아버지들의 냄새요. 그건 지독합니다. 서울 속 하늘을 가릴 만큼 높은 빌딩보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보다 휘황찬란한 강남의 젊음보다 그 쇳가루 튀겨지는 냄새가 내 가슴을 찔러댔다 이 말입니다.


 최근에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요. 오히려 좋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근데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지 않다는 겁니다.  터질  쓰나미가 휘몰아칠 듯이 불안의 연속이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며칠 씻지도 않고 집구석에 박혀 휘몰아치는 불안에게 두들겨 맞고 누구에게도 도움 요청하지 못하는  나는 살아보겠다는 마음 아래 문래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냄새가 나는 듯하니까. 날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어느 조그마한 열 평 남짓한 공장에 홀로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선반을 하는 아저씨를 한참 동안 먼 거리에서 바라봤습니다. 사실 이건 엄청난 실례입니다. 쥐뿔이지만 나도 해봐서 알거든요. 일하는 내내 신경은 기계에 가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까딱하는 순간 내 손가락과 이별입니다. 그걸 아는 놈이 실례임을 인지도 못한 채 중년과 노년의 문턱 사이를 헤매는 그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추운 날임에도 기계 돌아가는 열에 더운 건지 얇은 미닫이 문이 활짝 열린 공장 안 뻑뻑 나오는 담배연기. 좁아질 대로 좁아진 미간 그 남자의 씻은 얼굴은 어떨지 가늠이 안될 정도로 시커멓게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

 

그는 한참 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게 왔습니다. 쫓아내려는 얼굴입니다.


-뭐 볼일이 있습니까?


-아니오.


-근데 왜 그래 사람 일하는 걸 쳐다봅니까 근처에 카페나 갈 일이지

 

-쇠 냄새가 맡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같은 일 하시거든요.


 금세 그는 동질감을 느꼈는지 표정이 풀리며 편하게 날 대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디서 하시는데


-대구에서요.


-아 삼공단?


-예


-아버지가 보고 싶었나 보네


-그것도 그건데 향수를 느낄만한 게 내가 아는 건 서울 여기밖에 없어요.  


그는 호탕하게 웃고는 날 촌놈이라 비아냥되었다.

 

-시커멓게 묻는 여기가 뭐가 좋다고 식사는 했어?


-아니오.


-밥이나 한 끼 합시다.


 남자는 날 데리고 마치 아버지 공장 앞에 있는 식당 같은 곳에 가 말도 없이

두 손가락을 들었고 이내 식당 이모는 당연하게도 백반 2인분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내 아버지처럼 물과 함께 밥을 해치웠습니다. 말 그대로 해치운 겁니다. 식사가 아니라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 정도란 말입니다. 세상 뭐가 급한 일이 있다고 다들 그리 급하게 먹는지 원.

 

 금세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는 내가 있건 말건 꺼억 트림을 하고 시커멓게 기름 떼 낀 손톱으로 이 사이사이를 정리를 했습니다.


-부럽네 그 아저씨


 닦이지도 않을텐데 기름 떼가 가득 묵은 손을 자신의 옷에 슥슥 닦는 시늉을 하곤 내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세월에 얻어맞았는지 퉁퉁한 것이 꼭 내 아버지 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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