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 Mar 18. 2022

어른이 되는 비법서가 있나요?

그럼 있지. 

 어릴 적 아버지를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단연코 맥가이버다. 덧붙이자면 욕쟁이 맥가이버.  

중후하게  할 일을 끝냈다면 곱절은 멋졌겠으나 그는 상스러운 말들을 기어코 입 밖 한가득 내뿜으며 집안 고장 난 것 들을 조금은 엉성하지만 모조리 고쳐댔다.  


 내가 자란 그곳은 참으로 오래된 집이다. 아버지가 결혼 전부터 살았으니 40년이 넘을 것이고 그 이 전에 살았던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가늠도 불가능하다. 내 가족 모든 역사가 그 집에서 쓰여있다. 그러니 낡을 대로 낡았을 것이다. 


 집에는 전기가 한 번씩 정신줄을 놓았고 그때마다 기가 막히게 고장 난 접합선을 잘라 대충 꿰매어 절연테이프로 아무렇지 않게 칭칭 감고는 툭 던지며 마무리는 네가 해라! 하며 내게 넘기고는 아고 시발 것 시발 것 하며 담배를 입에 무는 그의 모습은 꽤나 싫지만 멋들어진 면도 있었다. 


 재건축 후 몇 년은 괜찮았으나 전문적이지 못한 업체에 맡겼던 걸까 천장에 이음새가 벌어졌을까 여름철만 되면 빗물이 슬슬 새기 시작했다. 푸념을 일삼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긴 아버지는 이름도 모를 것들을 사 오라고 하며 지붕 위에 성큼 올라가 그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붓기 시작했다. 돌이켜보자면 그가 꼼꼼한 성격은 아닌지라 대충 들이부은 것일 테다. 하지만 꼬마의 눈에는 뭔들 안 멋있을까. 


 궁금했다. 아빠는 어떻게 그리 능수능란하게도 고치게 되었을까? 어른이 되는 비법서라도 읽은 걸까?

전기 고치는 법, 수도관을 풀어 수도 막힌 것 뚫는 법, 페인트 칠하는 법 등등 같은 어른 교본서가 있는 게 

아닐까? 

 

 아버지는 참으로 고약한 버릇인데 그가 내키지 않는다면 절대 답을 하지 않는다. 


아빠를 수차례 불러도 아는 체도 안 한다. 


그때도 그랬다. 


아빠 아빠는 이런 거 어디서 배웠노

.. 

아니 어디서 배웠냐고 

..

공장일 하다가 보니까 배운 거가 

.. 

할배가 가르쳐줬나

..


 묻기를 포기했다. 

 

세월이 흘렀다. 난 수많은 자취방들을 오갔지만 그 장소들은 지금 자취방 같은 흠들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방을 언젠가 만나게 될 줄 알았다.   처음 이사오니 벽지를 도대체 몇 장을 덧대어 바른 건지 두껍히도 붙어있는 벽지들을 보고 있자니 분명 벽지들을 다 떼고 나면 이 집의 평수가 다만 조금이라도 늘어나 있을 것이다. 딱딱하게 균열이 가 들떠있기도 하고 시리도록 잿빛의 시멘트가 드문드문 보인다. 


 없는 형편에 도배를 맡겼다. 잘되었겠지 싶었지만 역시는 역시다. 어떤 이유인지 창문 쪽 도배지가 들뜨며 균열이 생기고 난리가 아니었다. 여긴 아빠가 없다. 도움을 청할 곳은 없다. 틈 사이에 오공본드를 치덕치덕 발라봤지만 금세 떨어졌다. 틈새는 여간 흉한 게 아니었고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정면이기에 굉장히 거슬렸다. 다시 시공은 어림도 없었다. 유튜브를 찾아보고 또 찾아보고는 실리콘과 실리콘 짜는 기계를 사서 벌어진 틈 사이를 메꿔 메꿔 드라이기로 30분간 열을 가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가하면 벽지가 탈 수도 있으니 천천히 움직이며 위아래로 팔이 빠지도록 열을 가한다. 그리고 굳은 것이 확인되면 잠시 환기를 1,2시간을 시킨다. 반은 성공이다. 처음 해본 탓에 벽지나 창문 곳곳에 실리콘이 덕지덕지 난장판이다. 그래도 막은 게 어디겠는가. 실리콘 굳히는 시간보다 치우는 시간이 곱절은 걸렸다. 


 여름이 되자 내 자취방 역사 처음으로 바퀴벌레가 나왔다. 정신을 부여잡지 못하다가 시중에 유명한 겔 제품들을 구입해 신문지를 조각조각 내 집안 구석구석 그 징그러운 녀석들이 좋아할만한 곳들 서른 곳에 도포를 해놓고 벌레 막이 테이프를 두통 가득 써 막을 수 있는 모든 곳을 막아댔다. 다섯 평도 안 되는 이 쥐구멍 만한 집에 막아야 할 틈은 왜 그리 많은 걸까. 여름이 지나간 탓인지 다행히 아직까지 보지는 않았으나 올여름을 기대해 봐야겠다. 


 처음부터 그날까지 점점 수도가 막혔갔다. 물을 내려도 금세 내려가지 않는 세면대는 이제 양칫물을 뱉으면 먹은 식사를 유추할 수 있다. 수도관 나사를 풀어버리고는 찌꺼기를 제거한다고 했는데도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머리카락 같은 것을 녹일 수 있는 성분이 강한 발포제 같은 것이 있다 하여 풀어보기도 했으나 여전히 막히는 느낌이다. 바깥에 돌아다니는 다 쓴 우산 하나를 주어와 우산 살들을 다 부러뜨리고는 앞부분에 안쓸 헌 양말을 대충 주적주적 잘라 넣어 우산 봉에 달았다. 세면대를 분해했고 구멍에 들이 쑤셔 박았다. 

봉에 앞부분 무언가가 막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 더 더 밀어붙이고 붙이니 머리카락과 점토 덩어리 같은 것이 뭉쳐져 있었다. 지금도 사실 그게 뭔지 모른다. 


 이 좁은 5평 남짓한 허름한 공간에서 드디어 비법을 찾아냈다. 어른 비법서는 있었다. 

똥줄이다. 똥줄이 타면 사람은 해낸다. 어설프게라도 임시방편으로라도 하나하나 해치워 나간다. 

 달리 기댈 곳이 없으니 해야만 하니까. 한다. 


 욕쟁이 맥가이버에 실력만을 동경하던 꼬마는 비법서에 욕 또한 구성품이었는지 어느새 욕쟁이 말투까지 따라 하는 어설픈 맥가이버가 되어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투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