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
수해 입은 친구를 돕고 왔습니다.
성인 남자 둘인데도 흙탕물로 범벅이 된 집을 치우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악취는 빠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구요. 거리에는 더 이상 제 몫을 할 수 없는 물건들이 즐비했습니다. 유아 용품부터 어르신들이 쓸법한 물건.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터전들 말입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함께 슬퍼하고 자신의 잘못됨을 부끄러워하는 것. 때로는 사양하고 양보하는 것,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
맹자는 네가지 마음을 사단이라 칭했고 인간은 사단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생물로써의 생존 본능과 사회적 약속 사이 휘청이는 것이야말로 우리네 일생이 아닐까 합니다. 그 덕에 인간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맹자의 말에 옳다구나 맞장구를 칠 수 없지만 사단이 없는 것을 사람이라 불러서는 아니 된다는 말에는 완연한 동의를 합니다.
마트에 가 아이스크림을 두 개 꺼내고 계산을 하고 있으니 티비 속 뉴스가 나옵니다. 수해 현장에 나온 정치인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는데요. 모여있는 사람들 틈에선 허탈한 웃음과 욕들이 뒤섞여있습니다. 친구가 그 뉴스를 볼까 재빨리 친구 팔목을 끌어 잡고 나와버렸습니다.
실수는 조심하지 않을 걸까요? 본성이 나온 걸까요?
역시나 사람의 숨겨진 내면은 실수로 내비쳐진다고 믿게 되는 하루입니다.
친구의 몫까지 내가 화낼테니 나의 친구는 오늘도 내일도 소식을 모른 채로 지나갔으면 좋겠다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