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꽤나 더웠던 날입니다. 코로나는 여전히 극심했고 근처 공원 항상 어르신들이 장기 두는 자리를 사용금지라고 대문작만 하게 쓰인 테이프로 그 커다란 정자를 둘둘 감아 막아두었습니다. 무색하게도 바로 옆 나무 그늘에 어르신들이 턱스크라고 하죠? 반쯤 벗은 채 입에 담배를 문 채 윷 까래를 던지며 즐거워들 하시덥니다. 분명히 말하건데 저들은 어른이 아닙니다. 그저 세월을 지나온 자들 입니다. 건너편 그늘막 흙더미에 아이들은 제 얼굴만 한 마스크를 꼭 눌러쓴 채 땀을 송골송골 맺으며 놀고 있습니다. 오늘 만난 친구가 지금쯤 앞니 어딘가가 빠져 웃을 때면 바람이 술술 샌다거나 따위는 모른 채 그들은 헤어질 거고요. 아이들에게 잘못된 세상을 전해준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 한 부분이 하얀 마스크가 가득 찬 답답했던 세상이라는 기억이 남아버릴 것이 미안했습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중 단연 최고는 내가 지닌 능력으로는 문제에 해결방안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고작 마스크를 잘 쓰는 것뿐이고 여전히 이 상황과 일선에서 맞서 싸우고 계시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방역지침을 잘 따를 뿐입니다.
나를 포함한 자유의지를 가진 채 어른이라 불리며 살아가고 있는 성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른일까요? 우리는 어른이 아닙니다. 내가 당장 정부의 지침을 어기며 내 자유를 누리지 않았다 한들 우리는 나쁜 미래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전에 어른이란 단어는 이리 명시되어있습니다.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어른이란 무거운 두 글자의 말은 이것으로 설명하기 부족합니다.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라기만 해 오직 자신의 범위 안에서만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닙니다.
비록 100년도 채 살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다음 미래에게 지금 세상보다는 적어도 더 나쁜 세상을 물려주지 않아야 할 책임을 가진 인간. 그것이 어른이라 믿습니다.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린 미래만 남긴 채 찰나를 들렀다 가는 이방인입니다.
곧이어 백신이 접종되어 올해가 끝나갈 때쯤 일상으로 돌아간다 한들 미래에 진 빚이 짠 하고
탕감될까요. 뉴스 한구석엔 온통 북극에 빙하가 녹아 홍수가 났다느니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느니 이전보다 부쩍 늘어나고 있는 환경에 관련된 소식을 보면 우리에게 쌓인 빚이 지금 당장 코로나 사태만이 아닌 게 분명해 겁이 납니다.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빚은 무겁기 그지없으니까요 지금 당장부터 갚아 나가야 합니다.
지구가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다가올 미래가 우리에게 물어옵니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당신은 책무를 다하고 있습니까?
커다란 일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손 놓고 있기엔 이미 많은 빚들을 충분히 쌓아가고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에게 현재에 사는 이방인들이 떳떳한 '어른'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