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에게

by 이선

서점이란 말보다 책방이라 부르길 좋아합니다. 이야기보따리가 한가득인 할머니가 계신 뜨뜻한 구들장에 놀러 가는 듯하거든요. 일손이 필요한 아버지 부탁에 시간을 내 주말 급하게 본가에 내려갔습니다. 말하기도 지겨운 이 시국에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뭣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따분함이 그지없어 단단히 무장하고는 번화가 책방에 갔습니다. 스무 살 이후 어느 공간에서 가장 오래 머물었냐 하면 아마 내 집보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고 많은 시간을 보냈을겁니다. 강박적일 만큼 이곳에는 10년 가까이 제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구석 자리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이는 해외 소설과 일본 소설 가판대 사이인데요. 두 개의 가판대를 잇는 차가운 철판에 등을 기댄 채로 맨바닥에 쪼그려 앉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을 찾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며 베스트셀러 중앙 가판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걸음도 없다시피 한 곳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인기척이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등 뒤에 책은 없는데 무슨 일이지 싶어 고개를 드니 연락이 끊긴 오랜 옛 연인입니다. 귀를 어설피 채우던 이어폰을 주머니에 주섬주섬 넣으니 정말 오랜만에 까랑까랑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쉬러 왔을 텐데 넌 또 여기에 오니?"


그 친구의 오른손에 끼고 있는 여럿 책들을 보며 너도 피차일반 아니냐며 서로를 보며 웃습니다.



바지에 묻어 있을지 모르는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니 친구가 악수를 건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집니다. 하지만 최근 요사이 그에 대한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먼지 나도록 날 때렸던 중학교 수학 선생님 이름처럼 머릿속을 뱅뱅 돌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잘 지냈어?


헐렁하지도 과시하듯 온 힘을 다해 잡지도 않은 딱 적당한 손아귀입니다.

그렇습니다. 10년 전에도 이 친구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담담히 밝히며 이 적당한 손아귀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꽤나 오랜 시간 두루뭉술했던 답을 그 친구가 답해줬습니다.


그 사람의 손아귀엔 나의 동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는 과시하지도 숨기지도 않지만. 사람의 기운이란 게 형태를 띄울 수 있다면 10리는 거뜬히 채울만한 들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딱 잘라 이곳까지 나의 영역이니 넘어오지 말라며 위압적이지 않았으나 지평선 저너머 어디에도 자신의 기운이 충만한 사람 말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들불'이라고 말합니다. 삶에 대한 확신에 차있는 사람의 눈은 들불처럼 타오릅니다. 그것은 우발적 동기처럼 쉽사리 꺼지지도 않으며 당최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는 정체모를 들불입니다.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틈에서 활활 타오르는 그들. 나는 심술 맞게도 그들의 들불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내 속의 불은 불안과 생존에서 오는 불순한 불씨라면 그들의 불씨는 정제된 순수한 불꽃입니다.


난 오래도록 이 친구를 닮고 싶어 했습니다. 이 사람의 적당한 손아귀, 들불을 담은 눈, 아늑 과 긴장 사이 팽팽한 기운까지.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입니다. 내 불은 호롱불 마냥 아주 조그마합니다. 위태롭고 조바심 나는 나약한 불입니다. 오랜만에 들불을 마주했습니다. 덕분에 내 조그마한 불순한 불꽃에 순수한 불꽃 한 줌 정도는 옮겨온 것 같습니다.


내 호롱불에 들불은 과분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이란 게 또 모르잖습니까?

호롱불이 엎어져 초가삼간을 넘어 들판을 태워버릴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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