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눈사람은 좋습니다

by 이선

경상도에 태어나고 자란 나는 눈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만. 딱 한 번 어릴 적 겨울의 어떤 하루는 제법 꽤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그날 난생처음으로 눈사람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마당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여있는 눈들을 뭉치고 뭉쳐 단단히 만들고는 골목 위에서부터 굴려가며 나 만한 눈사람을요. 투박하게 생겼었고 그렇게 예쁘진 않았습니다. 마당에 떨어져 있는 감나무 가지 둘을 팔이 있을만한 위치에 대충 떡 하니 꼽아두고 머플러를 둘러준 게 다입니다. 어느 눈사람의 운명대로 그 녀석은 내가 유치원을 다녀오는 매일매일 점차 작아졌습니다. 눈사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아이에게 실은 그 녀석에 대한 애정보다 어머니와 만든 시간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까웠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점점 녹아 사라져 가고 있는 눈덩어리들을 조금 떼 다시 꽉꽉 뭉쳐 조그마한 눈사람을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뒀습니다. 그 녀석이 녹지 않는지 유치원에 다녀오고는 바로 냉장고로 달려가 시도 떼도 없이 열어보곤 했습니다. 나의 눈사람아 녹지 마라 기도하면서요. 어제는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서울의 겨울은 늘 이런가 봅니다. 좀이 쑤셔 산책한다며 가득 내리는 눈 사이로 한참을 걸었습니다. 돌아오는 제 자취방 앞, 예쁜 고양이 눈사람이 있덥니다. 누가 너를 만들었니 고양이 눈사람을 만들 걸 보니 너를 만든 아무개는 고양이를 참 좋아하나 보다. 제법 조각이 잘 다듬어진 걸 보니 어린아이가 만든 건 아닌 것 같고 오피스텔 앞에 만들어져 있는 걸로 가늠해보자면 어른들끼리 친구들끼리 또는 연인이 널 만들어주었니? 예쁘다.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줍니다. 내 손 가득 냉기로 그득하지만 따뜻합니다.


눈이 싫어지면 나이가 든 거라 말하던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저는 눈이 싫습니다. 낡은 신발 틈으로 들어와 내 발을 얼리기 바쁜 녀석인 데다가 지겹도록 집까지 따라 들어와 신발장마저 축축이 더럽히기 일수니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사람은 참 좋아합니다. 따뜻한 손에 닿으면 이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마는 눈송이들을 모으고 붙이고 뭉치고 굴려가며 힘쓴 이름 모를 당신이 보여서 좋습니다. 완성시킨 눈사람을 바라보며 오래 그 자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그 자리를 떠난 당신 덕분에 난 한 번쯤 눈사람을 쓰다듬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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