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2)

by 이선
집(1) 에서 이어집니다.


한동안 유치원에서 하원 할 때면 골목길 어귀에서부터 왁자지껄 소리와 함께 지붕 위 목수 아저씨들이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고 이전 공간은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어설펐던 옥상 같지 않은 옥상, 추운 밤 가기 싫어 밤새 소변을 꾹 참게 만들었던 재래식 화장실은 허물어졌고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엔 그곳엔 시멘트를 다듬어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조그마한 그 텃밭에는 일곱 살 나 만한 작은 감나무 꼬챙이를 심었다.


엄마는 전보다 깔끔해지고 넓어진 집에 몹시나 만족했지만 리모델링이 다 된 우리 집은 아쉽게도 여전히 어딘가 이상하고 어설픈 집이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마당은 시멘트로 가득 메꾸어져 통로 같이 기묘하게도 긴 거실이 되었고, 길쭉한 덕분에 여름 에어컨의 혜택을 받는 방은 어디에도 없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와 아빠는 거실이라 불리는 통로에 설치된 에어컨 바로 밑자락에서 여름 대부분을 보냈고 그 시기 부자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거실 천장에는 햇빛이 들어올 공간이 부족했다 판단했는지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을 설치했었다만 기다란 통로를 빛으로 채우기엔 터무니없이 작았다. 그럼에도 미숙하고도 조그마한 유리창들은 맑은 날 푸스름히 뜨는 달을 집 안으로 데려오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했다.


단연 인상적인 공간은 여전히 욕실이었다. 지금껏 그 공간을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욕실 같지 않은 욕실에서 욕실이라 하기엔 너무 큰 공간으로 진화해버렸다. 쓰지 않던 셋방이 욕실로 쓰이게 되었는데, 셋방 바로 옆에는 누가 봐도 욕실로 하면 되겠다 싶은 공간이 존재했는데도 어느 누구도 커다란 셋방이 욕실이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 크기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보다도 넓었는데 깔끔함을 강박스러울 정도로 지키는 엄마는 욕실 타일타일마다 끼인 물 떼를 청소할 때면 들판같은 욕실을 보며 매번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난 그녀가 주말마다 욕실을 청소하는 날이면 어설프게라도 팬티바람으로 그녀를 도와 불평을 잦아들게 했다. 또한 온수와 냉수의 방향이 반대로 리모델링이 되어있었다. 파란색 냉수 표시가 붙은 오른쪽으로 돌리면 따뜻한 물이 나왔고 빨간색 온수 표시가 붙은 왼쪽으로 돌리면 차가운 물이 나왔다. 집안에서 냉수 방향으로 틀어서 씻는 뜨끈한 샤워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집 밖에서 손을 씻을 때나, 어디선가에서 샤워를 할 때면 몇 번이고 곤욕을 치렀다. 추운 겨울 파란 표시가 붙은 쪽이 당연히 온수겠지 하고 손을 씻을 때면 손은 얼어 깨질 것 같고 이곳은 온수가 안되나 보다 싶어 꾹 참고 씻기를 마칠 때쯤이면 아차 하고 생각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족들끼리 집에 돌아와 이런 얘기할 때면 다 같이 웃음보를 터트리곤 했다. 그곳에서 서른 평생을 살았던 나는 여전히 세면대 앞에서 한차례 머뭇거린다.


밀대 보다 가늘고 볼품없었던 감나무는 세월을 먹고 자라 동네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었다. 그놈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그렇게 자랐을까. 가지치기도 하지 않아 하늘 위로 끝도 없이 자랐다. 벅찰 만큼 열매를 맺는 바람에 수시로 쿵 드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자는 나를 화들짝 깨운 적이 수없이 많다. 날이 좋은 날이면 마당에 있는 어디서 주워온 지 모를 편의점 의자에 앉아 녀석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쬐며 가족들은 이런저런 추억을 곱씹었다. 가족들은 나무를 쓰다듬으며 잘 자라줘서 우리 집에 시원한 그늘이 되어줘서 고맙다며 종종 인사를 건넸다. 매년 다 먹지도 못할 감을 따겠다고 겁쟁이 가족들이 거미줄, 풀쐐기와 싸우며 온갖 용을 쓰는 것은 우리만의 가을 행사였다. 사람 능력으론 절대 닿을 수 없는 꼭대기 잘 익은 감들은 온갖 새들을 불러왔고 가족에게도 넘치는 양에 감을 수확하는 날이면 이웃에 나눠주기 바빴다. 녀석의 크기로 짐작해 보자면 이미 다져놓은 시멘트 정도는 가뿐히 뚫어버리고 우리 집구석구석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우리가 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녀석 보살핌 속에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매 해 코가 시큰해질 시기가 오면 집 지붕들을 덮을 만큼 크게 자란 녀석의 썩은 잎들이 지붕 배수구를 막았기에 사다리로 올라가 녀석의 한 해의 끝을 뒤치다꺼리했다. 그사이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에게 어느새 감나무집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거대한 녀석이 그렇게나 자기주장을 했으니 당연한 별칭이었다.


시간은 무르익었고 기어코 변화가 찾아왔다. 조금 어설프지만 환해진 집을 보며 기뻐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의 모습은 점차 사그라 들었다. 달을 비추어 주던 창은 지울 수 없는 묵은 때로 하늘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틈새가 헐렁해졌는지 그 사이로 비가 새기 시작했다. 가끔 많은 비가 내리던 날이면 다음 날 창 근처 도배지에 물이 가득 차 불룩해지기 일상이었는데 그때마다 도배지를 쭉 째면 고였던 누런 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그녀는 비가 떨어지는 바로 아래 목욕 바가지를 둔 채 빗 물이 튀지 마라며 바가지 안에 마른 수건을 대충 집어던지고는 이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푸념을 단 한차례도 빼먹지 않았다. 그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봤던 아빠는 한마디 할 법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탓했는지 단 한 번도 푸념에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한 때 우리 집에 낭만을 전해주던 창은 침묵만 가져다 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새어 나오는 빗방울만이 받쳐놓은 양동이에 대고 톡툭 소리를 냈고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녹물을 품은 빗방울은 받쳐놓은 목욕 바가지 뿐 아니라 한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던 한 여자를 향해 파문을 일으켰던 것 아닐까.


OO동 골목 감나무집.

어려워진 집안 사정에 코로나까지 더해 우리는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사업한다는 사람이 이제 집까지 없게 되었다며 하소연하는 아버지를 우리는 잘 팔았다고 서로를 다독여 주었지만 당연히 우리의 단 하나뿐인 집이었던 그곳은 자연스레 금기어가 되었다.


본가 이사 후 한 달이 지났을까 시간을 내 이사 간 부모님을 찾아뵙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난 이사한 부모님 집에서 조금 더 일찍 나와 이제는 '남의 집'을 보러 갔다. 뭘 대단한 것을 보러 간다고 긴장될까. 가까워질 수 골목 너머 감나무가 고개를 내민다. 대문에는 녹슬고 벗겨진 초록색 익숙한 사자가 아닌 검은색으로 두텁게도 칠해진 사자가 날 경계했고 처음 보는 CCTV가 달려있었다. 까치발을 들어보니 '나의 방'이었 던 곳이 보인다. 마당도 창고도 어설프게 맞춰져 있는 퍼런 수도 계량기 뚜껑도 그대로다. 저기 저 현관을 열면 소용돌이 치는 철 찌꺼기가 가득 박힌 아빠의 두꺼운 작업화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을 것만 같다. 다시 뻑뻑하기 그지없는 중문을 힘껏 열면 투박스럽지만 정겨운 말투로 부모님이 날 반길 것 것이다. 곧이어 잘 열리지 않는 촌스런 옥색 방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잘 지냈냐고 내 등을 뼈만 남은 앙상한 팔로 투박히 쓰다듬을 것이다. 난 적당한 인사를 하고 당연스레 내 방에 가 외투를 훌쩍 벗어버리고는 침대에 퍼질러져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있지 않을까.


그랬었는데, 내키보다 조금 높은 문틈을 한참 들여다보고는 이내 발길을 돌려버렸다.

단지 삭막하고 늙어버린 이 동네에서 감나무집이라 불리게 해 준 시원한 푸르름과 열매를 모두에게 내어주기 만 한 녀석만이 여전히 자리에서 머무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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