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나만의 기념일
세상사 의미 붙이길 좋아하는 건 나만이 아니겠죠? 저는 개인적인 기념일을 꽤 가지고 있답니다.
그 중 하루는 오늘입니다. 전 이날을 탱탱한 종아리의 날이라 부릅니다.
불현듯 찾아오는 나만의 소중한 기념일입니다.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예민한 뇌 덕분에 숙면이란 단어는 나와 상극입니다. 하지만 이날만큼만은 예외입니다. 석 달에서 길면 반년에 한 번씩 찾아와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고 상쾌하게 일어나게 되는 날입니다. 전 이날을 '탱탱한 종아리의 날'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랜 나날 지독스러운 불면과 함께 살았습니다. 당연스럽게 불면 후 아침은 해소되지 않은 피로로 가득합니다. 안타깝지만 저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상태입니다. 그 때문인지 쾌청하게 찾아오는 이 날의 신체 변화는 매섭게도 선명히 느껴집니다. 채 아침이 찾아오기도 전 푸르스름한 새벽에 자연스럽게 떠지는 눈동자. 머리통 정중앙 팡! 하고 민트가 터지는 듯한 상쾌함. 이윽고 공기 중에 부유하는 이름 모를 기운들이 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탱탱한 종아리 날'이라 칭하는 것처럼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곳은 종아리입니다. 여느 아침처럼 짐을 챙겨 현관을 나서지만 본래와 다르게 아킬레스건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댕겨져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달릴 준비를 한 것처럼 드릉드릉 시동이 걸린 종아리에 부드러운 힘이 잔뜩 응축되어 있습니다. 잔뜩 성난 종아리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발바닥은 알아서 지면을 힘껏 밀어냅니다. 내가 가는 건지 이 종아리가 날 앞으로 밀어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숨을 크게 깊게 들이쉬며 푸르스름한 아침 공기를 몸속에 가득 넣고 이따금 찾아오는 기념일을 위해 꾹 참고 듣지 않던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을 듣습니다. 동기 동기 둥가 둥가 이 곡의 첫 반주음은 기분 좋은 긴장으로 가득한 내 종아리에 힘을 더 보태줍니다. 곡의 가사처럼 다시 태어난 듯합니다. 늦은 것도 아닌데 괜히 지하철까지 통통 뛰어갑니다. 난 대부분의 날들을 평정에 집착합니다. 내가 너무 들뜨는 것도 바닥에 가라앉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탱탱한 종아리의 날 만큼은 예외입니다. 언제 다시 찾아와 줄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한 여름이 될지 겨울로 들어설 때쯤 일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올 그날이 언제일까를 기다리진 않으렵니다. 그저 오늘 하루만큼은 탱탱한 종아리로 평정 따윈 걷어 차고 특별한 나만의 기념일을 즐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