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가 살았다.

by 이선

대구 어느 골목길. 정확히 나의 옛날 집 건너편에는 두툼한 악어가 살았다.

누군가가 그 낡아빠진 골목길 사이에 거대한 파충류를 키웠다는 게 아니다.

이름 모를 아무개 씨가 담벼락 균열에 보수를 했는지 덕지덕지 시멘트를 발라놨다.

그 형태는 악어 비슷한 느낌이 아닌 정말 누구나 봐도 악어다. 커다란 긴 몸, 거기다 온몸 토돌 토돌 나온 돌기들 하며 짧은 다리를 가진 악어. 시멘트 담벼락에서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듯했다.


머리통이 어느 정도 굵어져 마당에서 편히 쉬고 있을 무렵에도 대문 너머로 악어다!라는 까랑까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지겹도록 들렸다. 그래 그들의 눈에도 악어였다. 그 악어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지 아무도 몰랐다. 단지 엄마가 어렸던 누나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누나들은 내게 알려 주었다.


이 골목길엔 악어가 산다.



골목에 살았던 우리들의 약속 장소는 담벼락 악어 앞이 되었다.

느지막 저녁 해가 질 무렵 놀이는 끝나고 "악어" 앞에서 만나기를 약속하며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내가 더 이상 뛰어노는 것에 관심이 없어질 나이에도 골목의 많은 아이들은 항상 악어 앞에서

그들의 놀이를 시작했다. 학업에 치였고 자취를 하게 되고 본가에 들를 날이 적어지자 악어 따윈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오고 가는 틈틈이 보여도 내겐 그저 시멘트일 뿐이었다.


서울에 사는 나는 본가로 내려갈 일이 생겼다. 30년 가까이 본 그 길은 언제나 익숙하고 포근했다.

아니 그날은 아니었다.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다. 똑같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이고 여기저기 균열 덩어리인 이곳이 왜 그리 낯설었을까. 여기 뭐가 있었지. 번뜩 생각이 들었다.


악어! 그래 꼬맹이들의 악어. 우리들의 악어!

악어는 사라졌다.


악어가 헤엄치던 담벼락은 무너지고 골목길 주민들이 이용 가능한 텃밭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푸르뎅뎅한 채소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없는 어르신 동네에 더 아이가 없는 노인 골목 한 부분이 꽤나

쓸모 있게 변했다.


이제 새롭게 악어를 기억에 새길 수 없다. 오직 몇몇에게만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곳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균열을 메웠던 아무개는 알았을까 당신의 투박한 손길로 덧바른 악어 무늬 앞에 수많은 아이들의 약속이 새겨지고 수많은 안녕을 고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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