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라는 축복

불안이 내게 준 선물

by 이선

종종 나의 소중한 그대들은 나에게 지겨움이란 걸 모르는 사람 같다며 날 설명하곤 합니다.

사람들의 말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버릇에 허허 웃고 맙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난 지겨움을 느끼지만 권태를 사랑합니다.


왜 난 권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세상 속에 단 하나 빠져 있는 것. 영원함. 세상만사는 유한합니다.


당연히 영원한 권태라는 건 없습니다. 아무리 지겨워 좀 쑤실지라도 모든 것엔 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죽고 못 사는 친구, 익숙해져 버린 업무, 그리고 부모님까지도

사랑하고 아낌을 마다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끝이 있습니다.

권태란 필멸 속에 이따금 찾아오는 평온함으로 흠뻑 젖은 황홀한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태와 관련된 모든 것 중 나는 특히나 권태로운 '관계'를 가장 사랑합니다.

권태가 왔다 느껴진다면 내게 그 말은 곧 대상과의 티끌만 한 모든 긴장을 떨쳐내고 온전히 편안함이란 바다에 함께 풍덩 빠져버렸다는 말입니다.


권태는 꽤나 재미있는 면모를 숨기고 있습니다. 권태란 어떤 대상이나 행동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더 이상 새로운 점이 없다며 자부할 때쯤 고개를 들이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때 다시 자신이 안다고 자부했던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찬찬히 대상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가 보고자만 했던 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드러납니다. 이내 겸손해집니다. 이윽고 우리는 평생을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만이란 걸 박살 내버릴 만큼 새로운 무언가는 분명히 나타납니다. 까불거리던 권태는 슬그머니 등을 돌려버립니다.

우리 대부분은 애써 잊으며 사는 절대적 사실을 기생화 (날 먹고 자란 불안을 나는 종종 기생화라 부릅니다.) 덕분에 나는 일찍이 그리고 홀로 오래 생각하고 지내왔습니다. 우리는 영원을 살 것 처럼 믿지만, 실은 지금이 나의 마지막일지, 당신의 옆자리를 지키는 그대가 마지막 일지도 모릅니다.


기한 모를 찰나 속, 나와 함께 생을 보내는 여러분들과 권태라는 궁극적인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니 도저히 권태를 사랑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습니다.


남은 삶 속에서 내가 느끼고 만나는 것들에 권태가 다시 또 고개를 빼꼼 내민다면 버선발로 뛰쳐나가 녀석과 진한 포옹을 할 것 입니다.



네가 찾아온 것 보니 내가 또 다른 평안함에 가까워졌나 보구나 생각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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