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기억은 네 살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이다. 병실이 아닌 방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발목을 잡고 엉엉 울었다. '애가 뭘 알겠냐 여럿이 우니 따라서 운 거지' 라는 주위 어른들의 목소리 또한 또렷이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는 서늘함. 우리에게 영원함 따윈 없다.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가 앙골모아 대마왕이 내려와 세상을 종말 시킨다며 TV프로그램에서는 종말이 다가올 때 취해야 할 행동 따위의 편성을 했다. 나와 나의 그대들의 순간이 벌써 끝이라니.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어떻게 하냐고 우는 내게 '아이고 우짜긴 우짜냐~ 고마 살아야지' 웃고 마는 어른들이 얄미웠다. 나와 함께하는 당신들의 삶은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때쯤 인류를 위협할 소행성이 지구에 다가온다는 뉴스 또한 자주 보도되었는데, 저런 종류 뉴스가 내 눈에 스칠 때면 잘 다루지도 못하는 컴퓨터를 켜 온갖 지식이 적혀있는 곳에 소행성이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따위를 하루 종일 검색했다. 답은 한가지다.
시간이 지나 10살 마침내 나는 지독히 증오하지만 평생을 함께할 무언가를 꽃피웠다.
꽃 피웠다는 아름다운 표현이 저따위 것에게 어울릴 말인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 깊숙이 어떤 것들을 양분 삼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내 발 밑에서 자라나는 것을 보면 적절한 말이기도 하다. 자기전 큰 볼일을 보고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며 원래 방으로 꾸몄어야 할 공간이 화장실로 만들어져 내 방보다 화장실이 훨씬 더 컸었고, 그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공간에 괴상한 모양의 분홍빛이 섞인 타일들 (연속된 타일들을 멍하니 보자면 마치 화성침공에 나오던 외계인같이 생겼다.)은 이런저런 쓸모없는 생각을 절로 불러오게 했다. 내일 볼 애니메이션이나 친구들과 할 경찰과 도둑을 떠올리며 어디로 도망을 가야 좋을까 그 나이에 어울릴만한 생각에서 급작스레 삶의 유한함에 대한 끝없는 생각들이 날 옥죄어왔다. 사건이란 건 불시에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조그마한 내 뇌 속으로 끊임없이 원치 않은 생각들이 밀려왔고 심장은 고장 난 듯 펌프질을 미친 듯이 하기 시작했다. 뛰는 심장을 가라앉힐 방법은 배워본 적도 없었다. 생각들이 사라지길 바라며 소리를 질렀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랴 큰 볼일을 보랴 10살 꼬맹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버둥을 처댔다. 그 모습을 티비속에서 봤다면 꽤나 우스운 꼴이었겠다. 한 손에 쏙 잡힐 만한 조그마한 찻잔위로 폭포수가 채워지니 잔이 채워지는 게 아니라 잔이 폭포수에 잠기게 된 꼴이다. 대충 화장지로 뒷구멍을 틀어막고 화장실을 뛰쳐나와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함에 생각들을 그만두고 싶었는지 머리를 온 힘을 다해 콱콱 쥐어박았다. 엄마는 뛰어나와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보았고 나는 그녀를 보며 펑펑 울었다.
그랬다면
가정이란 건 끝도 없는 소모이지만 난 그때의 그 날을 종종 돌이켜본다. 열 살 아이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고 다음 날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 나 병원 가보면 안 되나
그녀는 한동안 침묵을 택하고는 내게 말했다.
뭐라카노 괜찮다. 시간 지나면 다 괜찮다, 다 그런다.
그녀는 거짓말쟁이었고, 외면을 택했다.
내가 키워버린 그 꽃은 그렇게 당연히 철 지나 사라질 잡초 정도로 묵인되었다. 만약 그녀가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치료를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불안과 이리 살을 맞댄 채 서로의 안부를 한 번씩 묻는것이 당연한 삶이 아니지 않았을까 원망 조금 섞인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 후로 난 불안과 쭈욱 함께 자라왔다. 내 몸을 빌린 그 녀석은 내가 자라는 만큼에 곱절로 커지게 되었다.
개중 불행 중 다행인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일상 대부분 시간 속에서 이 녀석을 짓밟은 채 날 휘감지 못하게 철저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짝 힘을 주는 데 도가 트게 되었다. 항상 긴장하며 내 감정이 요동치지 않게 나를 다스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단 한순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느슨히 내일을 준비하는 밤, 그 밤 중에서도 수면이라는 상태로 가기 직전 모든 긴장이 풀어질 때면 그 재수 없는 불안은 내 잠을 화들짝 달아나게 했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날 집어삼켰다. 부모님은 불안에 해메이는 자식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깨물며 온 몸에 힘을 준 채 그 녀석과 싸웠다. 사실 싸웠다기보다는 두들겨 맞으며 버틴 게 아닐까 싶다.
손아귀엔 밤새 버티느라 불끈 쥔 주먹 속 손톱 덕에 벗겨진 살가죽이 채워진 날이 없었다.
난 그 녀석과의 연이은 만남 이후 응당 누려야 할 편안함을 반기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 적이 단 하루도 없다. 아주 기나긴 밤을 홀로 보냈다. 잠이란 내가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지쳐 쓰러져 버릴 때만 허락되었다.
17살이 되었다.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엄마에게 알렸고 그녀는 탐탁치 않아 했지만 저녁시간 상담센터에 날 데리고 갔다. 긴시간 상담이 끝나고 그곳의 의사는 바깥에서 날 기다리던 엄마를 불러왔다. 짧은시간이었지만 의사는 격정적 어조로 엄마를 혼냈다.
그녀는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한동안 침묵을 택하다 내게 말했다.
"넌 꼭 이런데를 와야하니? "
난 그날부터 세상에 대한 문을 닫았다.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다.
내게 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밤과는 달랐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 녀석과 만나지 않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발악의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돌보며 지켜보며 살아왔고 아마 남아있는 삶 또한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서른이 코앞인 지금도 여전히 일 년에 두어 번 내가 약해져 있을 때면 여지없이 녀석은 날 만나러 슬금슬금 삐져나온다. 그 녀석과의 해후는 혼을 쏙 빼놓는 것은 여전하지만 나 역시도 백기를 들 생각은 전혀 없다.
자조적이지만 기나긴 동거 속에서 내 유통기한은 언제일까 유통기한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따위에 대한 시간 낭비를 그만두게 되었다. 오늘이 내 유한함의 끝일지도 모른다 여기기로 다짐했다.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될 절대적 사실을 기생화 덕분에 일찍이 깨달았다. 그리고 잊지 않게끔 한번씩 그녀석은 나를 맞이하러 온다. 나는 유한하다. 영원함 속에 살고 있지 않다. 웃고 울고 화내기도 하고 오늘 하루 나에게 부끄러움 없이 오늘이 내 마지막이더라도 후회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잠자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 마지막이 지금이더라도 후회가 없기를 바라며 지금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