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올림픽에 열광하는 이유

by 이선

삶을 살아가는 자세는 크게 두문장으로 나눠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다 또는 하지 않는다.


자의적으로 삶을 종료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돌아가는 그날까지 무언가를 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에 이바지하는 무궁하게도 박애적인 일이건, 지극히 개인의 소탈한 이익을 위한 일이건 우리는 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입니다.


무언가를 하기를 택했다면 당연하게도 행동에 따른 보상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또는 그럴듯한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공평함을 부르짖길 일삼지만 제가 지켜보고 살아온 세상은 그렇게 딱 떨어지듯 평화로운 주고받기가 이뤄지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점과 때론 슬며시 외면해버리는 것 또한 절절히 느낍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도대체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는 무언가를 지속함에 따라 보상을 얻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대다수에게 100% 확률은 없습니다. 그저 확률만 높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자리 확률에서 두 자리로 나아가 더 높은 숫자로 쌓아가는 것이 삶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내고 또 해낸다면 달콤한 보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어떠한 것도 절대 받아낼 수 없습니다.


둘인 듯 하나인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합니다.


0000027091_001_20210802155815933.jpg 나탈리아 파르티카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인류는 왜 올림픽에 그토록 함께 열광하며 안타까워하고 기뻐하는 걸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모두가 올림픽은 우리 삶의 축소판이란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난 존재로서 해야만 한다는 숙명을 우직하게 짊어진 선수들과 동지애를 나누며 우리를 그들에게 투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생을 쌓아 만든 확률을 부둥켜안고 열매를 따 자신의 손아귀에 쥐는 실현을 우리는 두 눈으로 가슴으로 보고 느끼고 싶은 겁니다.


올림픽이 돌아오기까지 4년, 더해져 생에 전부를 확률을 높이는 지루한 싸움에서 그들은 무던히도 확률을 높여왔을 것입니다. 오늘 무슨 일이 생길까, 부상이 찾아올까, 나보다 더 뛰어난 자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그들을 넘을 수 있을까. 내가 염원하던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까, 수많은 의문들의 손아귀를 뿌리치며 선택지라는 말 따위는 감히 붙을 수 없게 해낸다는 길만 걸어온 고결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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