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강하게 생각합시다.

by 이선

목받이 없는 의자로 하루 종일 일을 하니 목 관절이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도저히 참지 못해 근처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전담하는 물리치료사 A는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나이스 한 사람입니다. 이선균의 목소리를 담았으며 눈은 큼지막히 양쪽으로 살짝 처진 것이 서글서글한 인상입니다. 물리치료사의 특징인지 몸도 다부졌습니다. 궁금했던 것을 하나 물으면 셋을 답해주는 사람이었고 상투적인 행동이었다 한들 환자들에게 자신을 지명하게끔 하는 친절함으로 무장된 그야말로 호감 가득한 사람 말입니다. 운동하시냐는 말로 나를 귀 기울이게 하고 자신도 운동을 좋아한다며 경력이 어느 정도냐 시작해 손에 굳은살 배기는 것을 뿌듯해하는 그 나이대 남자들의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치료시간 내내 이어졌습니다.


열 번의 치료를 더 받았고 세 달이 넘도록 주마다 한번 A에게 고장 난 내 목을 맡겼습니다.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그날까지 그리 여겼습니다. A는 나의 뒷 쪽 근육들이 여전히 꽤나 경직되어있다는 말로 시작해 다른 운동도 해볼 생각이 있냐 물었습니다. 난 요가를 다니고 싶다. 몸이 유연하지 않고 굳어있는 것도 아픈 이유가 될 것 같다. 유튜브에 요가 틀어놓고 아침이면 그것을 따라 하고 일을 시작하는데 꽤나 몸이 편해진 느낌이다 라며 답을 했습니다.


A는 묵직한 목소리로

"아 요가 참 좋죠! 요가! 건강에도 좋고 또 그 뷰가 좋잖아요."


"네?"


"아시면서 그 보이는 뷰도 좋지 않습니까~ "


그는 서글서글한 눈으로 능글맞게 웃어 보였습니다.


젠장맞을 뭐 이딴 걸 농담이라 하는 거지? 뭐라고? 뷰가 좋다고? 잘못 들었나 싶어 A를 바라보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굳어졌습니다.


몇 년 전 GX수업 (규모가 있는 헬스장에 따로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요가 또는 스피닝 등 그룹 운동 수업을 받는 것을 뜻한다.)중 요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신청을 했습니다. 매체에서 접한 도대체 척추라는 게 존재 하나 싶을 정도로 기묘하고도 유연한 자세들을 부드럽게 소화하는 요가인 들을 상상하며 나도 언젠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부푼 기대를 안고 수업에 참가했습니다. 남성은 그곳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대상입니다. 수업에 들어갈 때면 운동복 실루엣으로 여럿 부위가 보일까 봐 여성분들이 신경 쓰이는 것처럼 나 또한 신경 쓰였으나 남자들은 무조건 맨 앞자리에서만 요가 수업을 들었어야 했고 눈총을 받는 날도 허다했답니다. 그날은 친구 B, C와 함께 같이 수업 전 자의적으로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 무리들이 우리를 들으라는 듯이 "난 남자들이 그냥 이런 수업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어 굳이 사람들 불편하게 할 필요 있나 싶나 싶다 이거 말고도 할 운동 많을 텐데.. " 그 말에 무리들의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쳐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는 GX룸은 한순간 조용해졌고 같은 남자인 B와 난 친구인 여성 C에게 괜히 미안해지고, C도 얼굴이 벌게진 것을 보면 민망해하는 듯했습니다. 수업 후 그날 수업을 듣던 남자 둘은 GX 강사에게 수업에 참가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사실 거의 반강제였습니다.


내가 그날 쫓겨난 것은 육체의 시간을 늦춰보자는 하나 된 마음으로 온 사람들 틈에 운동에 집중하지 않는 몸매나 훔쳐보며 농담 식으로 뷰라는 말 따위를 입 밖으로 내뱉고 다니는 당신 같은 인간들 때문이었구나, 여러 헬스장을 다니며 GX 시간표에 요가 수업이 있을 때마다 듣고 싶다 생각만 하고 지나친 나날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들을 내쫓았던 아주머니들을 유난 떠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던 것이 부끄러웠고 차별이 생겨버린 이유를 내 귀로 직접 들어보니 울컥 화가 차올랐습니다.


그런 내가 보였는지 A는 몹시 당황하며 애써 괜찮은 척 아 이건 농담입니다! 따위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으나 내 연인이나 나의 누나가 저런 생각으로 가득 찬 인간들에게 친해지려는 농담으로 쓰이는 '좋은 뷰'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영 화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자신의 안위가 불안해질까 하는 염려였을까 이리저리 내 눈치를 보는 듯 한 A는 한층 더 중저음에 목소리로 내게 물었습니다.


"제가 혹시 실수한 것 있나요"


한참을 침묵한 나는 "어디 가서 그런 '뷰' 같은 얘긴 하지 마세요."라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그 후 A가 주저리주저리 말들을 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치료실을 나와버렸고 그리고 다신 그곳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싫은 소리를 해봤자 변할 건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내가 굳이 A에게 나지막이 내뱉은 이유로 얕게는 이기적 마음입니다. 몇 년 전 요가 수업에서 쫓겨났던 억울한 남자들의 울분을 모아 A에게 전달했다는 지극한 개인적 분노였습니다. 하지만 깊게는 그놈의 어디 가서 쪽팔릴 말들, 자신에게 부끄러울 짓을 왜 하냐는 말입니다. 당신의 한마디로 당신의 연인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어 버리게 되지 않느냐 우리 쪽팔리게 살지 말자 라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내뱉는 분노였습니다.

말과 행동은 사고의 통로이자 종착지입니다.

'실수했다!'는 '내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가혹하게 보일지 모르겠다만,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쓸 필요 없습니다. 들리는 말과 보이는 행동에 집착하여 나를 꾸밀 필요 없습니다. 도덕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당신의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들 앞에선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게끔 스스로를 다듬고 쌓아간다면 실수라는 이름 아래 당신의 추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시커먼 속내를 숨긴 채 건강한 언행으로 가는 길 따윈 없습니다. 건강한 사고를 한다면 우리의 언행은 스스로 건강한 언행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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