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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꼬마 Feb 06. 2021

나를 신뢰한 결과로 평생을 속죄하게 된 소녀

영화 <어톤먼트>를 보고

  세상에나.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염소 아저씨인 줄만 알았던 제임스 맥어보이가 이렇게나 미남이었다니. 영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끝나고 검색해보니 그 영화가 오래전 영화라 그런지 제임스 맥어보이는 무려 우리 부모님 또래다. 괜히 찾아본 기분이다.


영화 <어톤먼트> 포스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그 소설의 한국어판 제목이 <속죄>다. 그래서 나는 전과자라도 나오나 했더니 그 속죄의 주체는 뜻밖에도 침실에 있던 작고 어린 소녀였다.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라는 이름을 가진 그 작고 어린 소녀는 평생을 속죄할 죄를 지은 그날, 13세였다. 한국 나이로 치면 한두 살 정도 더 많은 그 소녀는 그날 왜 그랬을까?



  나는 브라이오니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폴(베네딕트 컴버배치)이 범인인 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던 그 소녀의 마음을 알아야만 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녀가 ‘어려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그녀를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보수적이었던 그 당시 브라이오니의 눈에 그들의 행동들은 상당히 괴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직접적인 표현을 쓴 편지나, 어린 소녀의 눈에는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을 사랑을 나누는 행위 등.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의 눈에는 그런 음탕한 편지도 사랑의 표시로 보였지만 브라이오니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든 저 미친 변태를 언니의 곁에서 떼어놔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영화 보는 내내 생각했지만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면죄부를 주기에는 그녀가 한 행동이 엄청났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비하인드를 찾아보고, 감독 인터뷰까지 찾아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한 행동은 아무래도 이해하거나 용서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감독은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로 ‘내 실체를 어떻게 알 수 있나? 그 실체를 신뢰할 수 있나?’를 말하는데 이는 브라이오니를 우리에게 투영시켜봐야 한다는 의미로 직결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굉장히 신기한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같은 장면이 두 번 반복되는 것이다. 브라이오니의 시야로 한 번, 그리고 객관적인 시야로 또 한 번. 브라이오니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이해했다고 믿게 되는 과정을 이러한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데 작고 어린 소녀였던 브라이오니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실체를 지나치게 신뢰해서 자신의 진짜 실체조차 믿지 않고 두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이런 브라이오니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며 나 또한 브라이오니처럼 내 실체를 지나치게 신뢰한 적은 없었나 생각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답은 정해져 있는 행동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를 상처 입히고, 누구를 곤란하게 만들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제서야 생각해본다.



  사실 이 모든 일을 만든 사람은 브라이오니라기보다는 강간범인 폴이다. 그 사람이 가장 나쁜 사람이다. 여자를 강간하고 결국은 그녀와 약혼하고, 결혼까지 한 그 사람. 나는 그 강간 피해자인 로라(주노 템플)도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행진 중에 브라이오니와 마주쳤을 때 급하게 고개를 돌리던 그 모습이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브라이오니만큼 미웠지만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녀에 대한 감정은 아직도 정리가 잘 안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반전이 덤덤하게 튀어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반전은 항상 빰! 하고 튀어나오곤 했는데 브라이오니 할머니의 잔잔한 인터뷰에서 흘러가듯이 지나가서 나도 잔잔하게 놀라고 말았다. 사실 그 반전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마음이 욱신거린다는 표현을 이 상황보다 더 알맞게 쓸 수는 없을 정도다. 호송 직전에 지하에서 죽은 로비(제임스 맥어보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전날 밤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며 설레는 아이의 모습으로 잠들던 그의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시체라도 끌고 가 세실리아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브라이오니의 입에서 덤덤하게 튀어나온 ‘로비가 죽었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눈도 깜빡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사고 회로를 의심해볼 정도로 놀랐지만 이번 내 실체는 신뢰할 만했고 애석하게도 세실리아마저 익사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다. 정말 마지막 그들이 바닷가에서 놀며 흰 나무로 된 오래된 별장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도 마음이 불편했을지 모른다. 그들이 죽어서 함께 그렇게 놀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속죄>라는 제목에 맞게 브라이오니는 마지막에 나름의 속죄를 한다. 스스로를 속죄한다. 그런데 그녀가 속죄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다. 브라이오니의 행동을 과연 속죄라고 볼 수 있을까. 브라이오니가 철이 들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결국은 용서를 빌지 못했다. 무서워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들은 모두 떠났다. 나는 브라이오니가 결국 아무에게도 속죄 받지 못하고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최소한 두 명에게는 평생 동안, 아니 죽어서도 죄인으로 남아야만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영화 공식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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