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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꼬마 Apr 12. 2021

중2가 사는 세상의 혼란

영화 <벌새>를 보고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에 나타나는 마이너한 감성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정한 스토리가 도드라지지도 않고, 뭔가를 해석하면서 봐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물론 좋아하는 부분도 있어서 영 안 보는 것도 아니었다만 왜인지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독립영화라 조금 설렜다.



  이 영화는 “나 독립영화요.” 하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독립영화인 줄 모르고 이 영화를 봤지만 보면서 느꼈다. 내가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부분 중의 하나는 일단 모르는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것이다. 상업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는 얼굴 덕분에 이것은 드라마다, 영화다, 하는 느낌이 나는데 독립 영화는 모르는 배우들이 나와 실제 이야기 같은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짜라는 인지 없이 자연스럽게 그 영화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와 같이 배우가 그 인물 자체라는 기분이 들어서 매번 좋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벌새>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나는 이 영화의 첫 장면에 대해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아리송한 느낌이었다. 집을 잘못 찾아가 울먹거리는 장면이 이 전체 스토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몰라서 영화를 다 보고 찾아보는데 그 결과 그 아파트는 서울 대치동 학구열의 중심이었던 ‘은마 아파트’라고 한다. 학구열이 강한 부모들이 학구열의 중심인 대치동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그나마 가격이 괜찮은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키우려는 노력이 그런 다닥다닥 붙어있는 복도형 아파트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학습 능력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 대우하는 은희의 부모님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지을 배경 삼은 것인 걸까.



  이 영화에서 가장 내가 크게 좋다고 느낀 것은 ‘사춘기’라는 시기를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습을 우습게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소년기’라는 시기에 애정이 정말 많은 편인데 가끔 사춘기 소년소녀들을 우습고, 우스꽝스럽게 다루는 것을 보면 불편해서 보기가 싫은데 이 영화는 방황과 혼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도 그들의 모습을 우습게 드러내지는 않았다는 것에서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세상을 살고, 비청소년들 또한 그저 그들의 세상을 사는 것일 텐데, 그럼에도 청소년들의 모습을 비아냥대는듯한 연출을 정말 혐오하는 나에게는 은희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혼란이 마음에 들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은희와 영지 쌤의 재개발 지역에 대한 대화다.


  “선생님, 여기 사는 사람들은 왜 현수막을 거는 거예요?”

  “집을 안 뺏기려고 그러는 거야.”

  “남의 집을 왜 뺏어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이 장면을 보고 아무리 은희가 94년도의 중2라고 해도 재개발에 대한 내용을 모를까 싶어서 “남의 집을 왜 뺏어요?”라는 대사가 조금 아이의 순수성을 너무 억지스럽게 끼운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대사 자체가 너무 따뜻했다.

  많은 관객들은 이 뒤에 이어지는 영지 쌤의 대사인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를 명대사로 뽑지만 나는 저 대화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특히 “집도 추울 것 같은데.”라는 말. 그 추운 집이라도 지켜내기 위해 소리치고 애쓰고 현수막을 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싶어서. 그 추운 집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보금자리였을까 싶어서.



  이 영화는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시선으로만 이루어지는 영화기 때문에 은희의 시선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면들은 가볍게 획 지나가는데 저 현수막이 드러나는 장면도 은희가 그 곁을 지나갈 때 옆에서만 비춰지다가 후에 떨어진 장면으로 표현될 뿐 적나라하게 재개발에 대한 내용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은희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른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서.



  두 번째 장면은 은희가 고막이 찢어지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때 대사다.


  “어쩌다가 고막이 찢어지게 됐니.”

  “…”

  “…진단서 필요해?”

  “왜요?”

  “증거가 되니까.”

  “…”

  “그래… 필요하면 얘기해. 알았지?”


  나는 이 장면을 혹시 학대받고 있거나 힘이 약해서 어디서 폭력을 당하고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약자들을 위한 의사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로 봤는데 어떤 사람들은 의사의 이런 행동을 ‘모든 것을 증거로 남겨야 한다는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내 의견이든 그 사람들 의견이든 감독이 의도한 것이야 있겠지만 별로 뭐가 틀렸다고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다면 나 또한 아직 은희와 다름없은 어린아이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특히 나는 저 사이 대화의 공백에 집중했는데(굳이 위에 대사를 쓰면서 사이사이에 “…”을 집어넣은 이유가 있다.) 나는 이렇게 봤다. 의사는 은희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며 고막이 찢어질 여러 경황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그중에 폭력을 가장 크게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은희의 대답에 따라서 안심을 하거나 진단서를 끊어줄 준비를 하거나 했을 텐데 은희의 침묵을 보고 폭력이라고 확신한 의사는 추후에 약자가 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진단서를 끊어줄 것일 것이다.

  저 “진단서 필요해?”라는 말을 내뱉기까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했을지 예상되어 마음이 미어지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의 상냥함에 눈물이 맺힐 참이었는데 그 의사가 돌팔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고 해서 마음이 아프다.



  요즘 글 분량이 계속 줄어들어서 고민이었는데 비교적 글을 길게 쓴 것 같아서 뿌듯하다. 역시 사람은 마음에 드는 것에 대한 글을 쓸 때 할 말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독립영화를 발견해서 기분이 좋고, 오랜만에 청소년들에 대한 존중이 드러난 영화를 본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아마 이 영화는 두고두고 마음에 남겨놓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사진 출처 : 영화 공식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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