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 룩 업>을 보고
“6개월 14일 후 지구와 충돌해요.”
“대략적인 너비가 5~10km니까 그럼 인류 멸종 수준이죠.”
“지구 전체가 파괴될 거란 얘기예요.”
이들은 이 문장들보다도 더 명확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5~10km 정도 되는 커다란 혜성이 6개월 14일 후에 반드시 지구로 날아와 지구 전체를 파괴시키며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는 이야기. 그럼에도 듣는 이들은 이토록 명확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99.78%의 확률이라는 말을 듣고 100%가 아니라며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디비아스키와 같은 얼굴을 할 수밖에 없다. 혹시 이 이야기가 어려운 이야기이던가, 하는.
극 중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며 함께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이는 단 두 명뿐이다. 디비아스키의 전 애인 필립과 현 애인 율. 오직 그 둘과 이야기할 때만 우리는 상식을 말할 수 있었다. 인류의 멸종에 대해 놀라고, 두려워하고, 대응하거나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련의 일반적인 과정들.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멸망을 이야기하는 이의 두려운 표정을 캡처하여 우스꽝스러운 인터넷 밈으로 만들거나 외모에 대해 논하는 등, 마치 ‘죽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마치 영화라서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네 사회도 다르지는 않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실제 그 문제의 요점을 짚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들의 과거 행적을 캐내 꼬투리를 잡거나, 성별을 통해 그들의 행실에 이유를 만들고, 외모를 문제 삼고, 가족을 깎아내린다. 건강한 비판과 토론이라는 것, 언제부터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Just look up’이라는 SNS상의 해시태그 챌린지가 진행되기 시작했을 때 관객은 일말의 희망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비로소 ‘멸망’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SNS 해시태그 챌린지를 통해 많은 것들이 나아지고, 또 알려지므로 이를 통해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었으나 이는 영화 속 세계는 이미 충분히 상식적이지 못했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었다. 곧이어 ‘Don’t look up’이라는 챌린지가 유행하며, 이 둘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이제야 이 영화의 제목이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매우 안타까운 제목이었음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Don’t look up’을 가장 열심히 외치던 대통령과 그녀의 비서실장이 영화의 포스터 내에서는 위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이러니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쩐지 기분 나쁜 동질감을 느낀다. 영화 속 그들의 어리석은 태도에 묘한 비웃음을 지니던 우리는 어느 순간 저 광경이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와 모함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언제나 곁에 있다. 우리는 과연 그것에 대한 모든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을 만큼 현명한가? 결단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애초에 우리가 듣는 ‘사실’은 매우 ‘주관적인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토록 주관적인 사실 앞에서 객관성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은 명확한 사실을 듣고도 이를 믿지 않는다. 우리 또한 사실 지금까지 지구 멸망을 듣고도 별일이 아니라는 SNS상의 이야기를 믿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매도하거나, 우매한 자라고 비난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그토록 어리석다고 욕했던 영화 속 모든 이들의 모습이 사실은 우리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당장 무얼 해야 할까.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공룡을 멸종시킨 것보다 훨씬 큰 소행성이 지구로 오고 있어. 궤도를 못 틀면 지구는 끝장이야.”
이렇게 말하는 디비아스키의 뒤에는 공룡 옷을 입은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그 순간 공룡과 인류는 동일시된다. 결국 인류도 공룡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처럼 제작진은 영화 진행 초반부터 결말을 알렸다. 하지만 극 후반으로 가는 과정에서 감독은 모든 게 공룡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우리가 공룡보다 못한 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힌다. 그들은 멸망이 불가피했고,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 무엇보다도 우리는 목숨이라고 비유되는 ‘사실’보다 앞에 둘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이 영화는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지는 그 찰나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찰나지만 그들이 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했다. 살기 위해 이를 알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를 부정하는 우매한 판단 끝에 사람들을 매혹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보가 너무나 많아져 버린 세상 속에서 정보의 가치는 떨어지고, 우리는 어쩌면 아무런 정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사실이 소중하지 않아진 세상. 우리는 사실보다 앞에 둘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사진 출처 : 영화 공식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