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새의 선물>을 읽고
“나는 봉희처럼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어린애들을 경원한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스스로 어린애임을 드러내 보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도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 따위 신체적 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직전까지,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한 번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금기가 많은 나이였지만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것 또한 많았기에 ‘현실’이라고 불리는 냉정한 사회에 던져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청소년들보다 더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린 패기로 어른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 만큼 대항했고, 우리의 권리를 위해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이었고 외침이었으며 노력이었다. 그를 통해 나는 세상을 배웠고 감정을 배웠고 나를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19살이 되던 날 나는 내가 ‘청소년’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날이 단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 나날 동안 무얼 해야 마지막 내 10대를 뿌듯해할 수 있을지 고뇌했던 것 같다. 결국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더 열심히 하자,라는 결론이었지만 나는 그 결론에 이르는 동안 꽤나 슬펐다. 나는 아직도 그 일을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퍼서 계속 지나가는 시간이 서운했다. 그래서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20살을 애써 밀어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마지막 청소년기를 보냈다. 최대한 청소년처럼, 청소년답게, 그렇게 살았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와 다른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빨리 어른이 되어 금기를 즐기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 친구와 나의 차이점을 고민하곤 했다. 그런 친구들은 미지의 세계에 좀 더 중심을 두었고, 나는 현재의 행복에 더 중심을 둔 아주 단순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 친구들을 한편으로는 이해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있다. 우린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데 노력하지 않아도 올 시간에 대해 빨리 오길 원하는 그 모습이 현재의 행복을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따온 저 말은 나에게 작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확실한 동조를 얻지는 못했다. 저 구절을 읽으며 저 아이는 본인이 다 자랐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며 타인의 행동을 다 이해하는 행동을 취하려는 저 거만한 말투가 썩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체적 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하는 것’이나 ‘어른 흉내에 매료되는 것’ 등은 나도 선호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저렇게 ‘어린아이들만의 생각’이라며 상대를 폄하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지도 않는다. 그냥 생각이 다르다고 여길 뿐이다. 물론 내가 화자보다 더 성장했거나, 더 어른스럽다는 말도 아니다. 나도 덜 성장했고, 아직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모두가 저렇게 세상 일에 통달한 듯이 행동하고, ‘어른’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저렇게 사람을 폄하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저게 진정 어른의 행동이라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살이 거의 다 지나가던 어느 날 내가 정말 좋아하던 선생님과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나는 청소년이 너무 좋은데 어떻게 내가 어른이 될 수 있냐는 어린애 같은 농담 식의 대화였다. 선생님도 웃으며 받아주셨지만 대화가 끝나갈 때쯤 한 마디 던지셨다.
“근데 네가 행복하고 즐거운 청소년기를 보낸 만큼 대학생활도 재미있을 거야. 너처럼 재미있는 생활을 해본 사람이 겪는 또 다른 재미는 네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거랑은 정말 다를 거고."
머리가 뎅 했지만 웃음이 났다. 현재의 행복에 연연하느라 나는 오히려 걱정을 더 많이 했던 걸까. 청소년기만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정말 ‘어린애들만의 생각’이었다. 미래에도 현재가 있고, 그 현재가 지금처럼 행복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웃음이 났던 것 같다. 화자의 ‘어린애들만의 생각’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알겠으나 그렇게 해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겠다. 철없이 살고 매 순간이 행복한 사람으로 살겠다.
책 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이모를 이렇게 정의한다.
“이모의 머릿속에서 세상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과 자기를 알아볼 줄 모르는 사람, 두 부류로만 나뉘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모 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정말 상대하기 힘든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지만 지금 다시 보면 영 나쁜 마인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화자처럼 사는 게 어른이라면 나는 차라리 화자의 이모처럼 살고 싶다. 아직 같이 공부를 할 대학 동기들의 얼굴조차 난 모르지만 그들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나에게 많은 웃음과 울음을 줄 테지만 나는 그들을 행복으로만 기억하고 싶다. 현재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지만 나는 지금 더 새로운 행복을 향해 얼른 나아가고 싶은 ‘어린애들만의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