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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쓰지 말자 Oct 24. 2021

여행의 의미

늦은 여름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급식에서 돈까스를 가장 끝에 먹고, 계란 장조림 비빔밥에서는 계란을 마지막에, 붕어빵에서는 바삭한 꼬리를 가장 늦게 먹는 나는, 여름휴가도 남들 다녀온 뒤, 늦게 가는 걸 좋아한다.  아직까지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이다 보니 그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여행을 다녔다. 모든 여행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20대 들어 주체적으로 여행을 가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부터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20대 후반. 그냥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와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그 때도 제주도로 향했다. 추석에 친척들을 만나면 잔소리만 잔뜩 들을 것 같아서 그 시기에 맞춰 여행을 왔었다. 그때 읽었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크릿’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그 책들을 읽으며 ‘할 수 있다’ 라고 주문을 외우며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뭔가 나의 생각이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이 끝났을 때 내가 그렇게 달라져 있지 않더라. 왜 사람들은 “여행 좀 다녀와”, “여행을 가면 마음 정리가 돼” 라고 말 했던 것일까? ‘나는 그냥 똑같이 고민하고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데 말이지’ 


뒤돌아보면 여행이란 건 그런거 같다. 여행 전과 후가 갑자기 달라지거나 그 효과가 선명하거나 명확하지 않다. 천천히 스며든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는 이랬고, 그때의 감정은 이랬지’라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이 좋은 것 중 하나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주변의 것들은 다 잊고, 온전히 지금 이순간 내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20대 시절에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게 뭔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여행을 통해 뭔가를 딱 결정했다기보다 결정의 방향을 조금씩 트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결국은 좀 더 끌리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마 사람들이 여행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도 포함된 것 아닐까 싶다.      


30대 후반,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나고, 이제 내게 여행은 ‘나’보다는 ‘아이’에 편중돼 있다. 숙소결정에서부터 식당, 카페, 관가ᅟ공지 선정에까지 모두 아이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아이가 짜증을 내고 싫증을 내는 순간, 그 짜증이 우리 여행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하우를 얻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지만, 그 과정은 일단 생략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무엇보다 어느새 훌짜ᅠ각 커버린 아이들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등하원은 보육도우미에게 맡긴 터라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잘 알지 못했다. 주말 이틀과 저녁 시간을 함께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기간동안 아침에 눈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모든 순간을 아이와 함께 했다. 내가 막연히 ‘우리 아이들은 숫기가 없어. 혼자서는 잘 못 해’ 라고 가졌던 걱정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커 있었다. 반면 아이들에 대해 잘 몰랐던 단점도 많이 알게 됐다. 편식을 심하게 한다든지, 싫증을 잘 낸다든지, 인내심이 적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면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나’를 찾을 수 있게 될 때가 된다면, 그때는 아이들도 ‘자신’들을 찾기 위해 떠나가겠지.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또 아이들을 찾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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