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여름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급식에서 돈까스를 가장 끝에 먹고, 계란 장조림 비빔밥에서는 계란을 마지막에, 붕어빵에서는 바삭한 꼬리를 가장 늦게 먹는 나는, 여름휴가도 남들 다녀온 뒤, 늦게 가는 걸 좋아한다. 아직까지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이다 보니 그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여행을 다녔다. 모든 여행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20대 들어 주체적으로 여행을 가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부터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20대 후반. 그냥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와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그 때도 제주도로 향했다. 추석에 친척들을 만나면 잔소리만 잔뜩 들을 것 같아서 그 시기에 맞춰 여행을 왔었다. 그때 읽었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크릿’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그 책들을 읽으며 ‘할 수 있다’ 라고 주문을 외우며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뭔가 나의 생각이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이 끝났을 때 내가 그렇게 달라져 있지 않더라. 왜 사람들은 “여행 좀 다녀와”, “여행을 가면 마음 정리가 돼” 라고 말 했던 것일까? ‘나는 그냥 똑같이 고민하고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데 말이지’
뒤돌아보면 여행이란 건 그런거 같다. 여행 전과 후가 갑자기 달라지거나 그 효과가 선명하거나 명확하지 않다. 천천히 스며든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는 이랬고, 그때의 감정은 이랬지’라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이 좋은 것 중 하나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주변의 것들은 다 잊고, 온전히 지금 이순간 내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20대 시절에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게 뭔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여행을 통해 뭔가를 딱 결정했다기보다 결정의 방향을 조금씩 트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결국은 좀 더 끌리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마 사람들이 여행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도 포함된 것 아닐까 싶다.
30대 후반,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나고, 이제 내게 여행은 ‘나’보다는 ‘아이’에 편중돼 있다. 숙소결정에서부터 식당, 카페, 관가ᅟ공지 선정에까지 모두 아이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아이가 짜증을 내고 싫증을 내는 순간, 그 짜증이 우리 여행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하우를 얻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지만, 그 과정은 일단 생략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무엇보다 어느새 훌짜ᅠ각 커버린 아이들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등하원은 보육도우미에게 맡긴 터라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잘 알지 못했다. 주말 이틀과 저녁 시간을 함께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기간동안 아침에 눈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모든 순간을 아이와 함께 했다. 내가 막연히 ‘우리 아이들은 숫기가 없어. 혼자서는 잘 못 해’ 라고 가졌던 걱정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커 있었다. 반면 아이들에 대해 잘 몰랐던 단점도 많이 알게 됐다. 편식을 심하게 한다든지, 싫증을 잘 낸다든지, 인내심이 적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면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나’를 찾을 수 있게 될 때가 된다면, 그때는 아이들도 ‘자신’들을 찾기 위해 떠나가겠지.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또 아이들을 찾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