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재(둘째,4살)가 은성(첫째,7살)이를 주먹으로 때렸다. 은재가 은성이를 주먹으로 때리는 걸 본 건 처음이다. 울분에 찬 분노의 주먹질이었다. “은재야 안 돼” 라고 하는데, 얼굴은 울기 직전. 은재는 참아왔던 화를 낸 것이다. 화가 많이 났나보다. 온 얼굴을 찡그리며 울먹거리는데, 그 표정에서 서러움이 읽힌다. 울면서 내게 다가왔다.
“아이고, 은재 이리와”
은성이 어린이집 친구 중에 은우라는 친구가 있다. 5살 때 같은 반이었는데, 우연히 문화센터에서도 만나게 되고 하면서 그 가족을 알게 됐다. 은우 엄마의 나이가 나와 같고, 대화를 하다보니 생각이나 가치관이 너무 비슷해 친해지게 됐다. 아들 친구 엄마 그 이상으로, 통하는게 많다. 아무튼 그 가족과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먹게 됐다. 은성이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탓에, 둘이 처음에 쭈뼛 하더니, 한 3~4분 만에 어색함은 금세 사라지고, 엄청 신나하며 서로 쫓고 쫓기며 놀았다. 형 바라기 은재는, 그 뒤를 또 졸졸 쫓아다니며 놀았다. 하지만 은성이와 은우(은성이 친구)는 은재가 쫓아올까, 문을 닫아버리고 잠그고 방안에서 둘이만 논다든지, 은재가 쫓아가면 다른 곳으로 간다든지 하면서 계속 은재를 따돌렸다. 사실 한 두 번 겪는 상황이 아니다. 은성이는 집에서는 은재랑 둘도 없는 사이처럼 잘 놀다가도 은성이 친구나 은성이보다 한 살 형들과 놀게 되면 은재는 없는듯했다. 웬만하면 아이들의 놀이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은성아, 은재도 같이 놀아야지 은재도 같이 챙겨줘” 하지만, 아이들은 그 말은 들은 채 만 채. 아직 뭐 나 외의 사람을 챙기는게 익숙지 않은 아이고, 따돌림이라는 감정이 어떤지 몰라서겠지만, 은성인 친구랑 놀기 바쁘다. 그 모습이 한 두번 위태 위태 했던 게 아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터진 것이다.
애들이 방에 들어가서 놀자 은재가 따라 들어갔고, 따돌리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다가, 은성이가 방에서 나가 쇼파에 앉자. 은재가 막 쫓아가 형을 주먹으로 때렸다. 화가 났다고 형을 때린 건, 잘못한 일이지만, 그 전체 맥락을 알고 있는 우리 부부는 은재를 꼭 껴안아줬다. “많이 속상했지. 우리 은재” 한참을 아빠 품에 안겨 운다. 한편으로 또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표현해줘서
난 어린시절을 기억한 이후로는, 화가 났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했던 것 같지만, 친구나 가족 외 사람들에게 화를 내 본적이 거의 없다. 화를 내거나 삐치는데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냥, 나와 불편한 사람과는 부딪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화를 내는 사람이 부럽다. 화를 낸다는 게 좋은 것만도 아니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다는 점이 부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화를 내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은재가 처음으로 그 화를 드러낸 것이다. 같이 있던 가족들도 “은재가 또 컸네요”라고 말한다. 집에 돌아와 은재에게 “은재야, 은재가 속상한건 알겠는데 그래도 형을 때리는건 잘못한거야. 다음에 그런 상황이 오면 ‘형, 그러지마’라고 소리를 질러”라고 했다. 이제 겨우 36개월인 우리 은재는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