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결혼 이후 맞이하는 명절은 이래저래 귀찮고, 신경 쓰일 일이 많다. 시부모와의 관계, 친정부모와의 관계, 선물은 어떻게 할 것이며 등. 매우 간단하게 썼지만 그 안의 미묘한 감정싸움들이 있다. 친정에 가면 다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신랑은 어떤 마음일지도 신경쓰게 되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예의 있게 행동하는지 등 신경 쓸 일이 많다. 또 오랜만의 잔소리도 피곤하다. 그런 불편함을 안고 가지만, 부모님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든 해 먹이려고 하신다.
이번에도 고기와 장어, 전복 등이 준비돼 있었다. 친정에 가서 먹고 나서 설거지라도 하고 싶지만, 엄마는 한사코 앉아있으라고 하신다. 아이들은 친정에 가서 유난스럽게 밥을 안 먹는다. 반찬 투정은 물론이고, 혼자 먹을 수 있는데도 떠 먹여달라고 떼를 쓴다. 아이들은 TV를 보며 먹겠다고 해서 거실에 따로 상을 차려줬는데, 내가 식탁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은재가 “엄마가 먹여줘”한다. 엄마는 “할머니가 먹여줄게”하고, 신랑도 “아빠랑 먹자”하지만, “아냐, 엄마”라고 막무가내다. 그래서 한입 입에 넣고 또 은재한테 가서 김에 밥을 싸주고 다시 자리로 온다. 엄마는 그 모습이 안타깝다. 일부러 아침에 평소에 집에서는 잘 못 먹을 것이라며 육개장이랑 갈치구이를 해주셨는데, 제대로 앉아서 먹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하지만 또 나는 육개장 맛은 어떤지도 모르고 입에 쑤셔 넣고는 은성이 은재에게 가서 또 한입씩 떠 먹여주고 다시 자리에 왔다.
이틀 내내 아이들의 떼와 응석받이에 딸내미가 절절 매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다 엄마는 “야들아, 너네가 엄마딸 힘들게 하잖아”라며 농담과 웃음 섞인 말로 아이들에게 한마디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뜻이 뭔 뜻인지 알 리가 없지 않겠는가, 아이들 반찬 투정, 밥 투정, 사실 30년 전 내가 시골에 가면 똑같이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시골에 가면 먹고 싶은 반찬이 없어서, 안 먹겠다고 떼를 썼고, 엄마는 그럼 부엌에서 간장과 참기름을 내 와 비벼줬다. 그렇게 떠 먹여줬다. 그걸 내가 또 하고 있었다. 안 먹고 떼쓰면 먹이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나도 그렇게 엄마의 고생을 먹고 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회사 출근 때문에 먼저 집에 와야 했다. (직업 특성상 연휴에도 쉴 수가 없다.) 신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가서 추석을 보내고 오기로 했고, 나는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을 와야 했다. 저녁 6시 40분차로 표를 끊어 놓은 상황. 오후 5시쯤, 손님(명절이라고 부모님 댁에 선물을 드리러 아빠 지인이 오셨다)이 가신 뒤 이제 딸이 갈 시간 이라는 걸 깨달은 엄마 아빠는, 저녁은 어떻게 하냐고 물으신다. “괜찮아. 점심 늦게 먹어서 아직 배불러 생각 없어”라고 하자 아빠는 “지금 얼른 식당에 가서 뭐라도 먹자. 그래도 뭐 좀 먹어야지” 하신다. 정말 배가 불렀고, 정말 저녁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요새 기하급수적으로 살이 붙던 터라 차라리 안 먹고 서울에 가서, 혼자 맥주나 한잔 하고픈 마음이었다. “아냐 진짜 괜찮아. 시간도 없어. 짐 싸고 터미널 가려면”, 내가 가려는 때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너무 늦은 시간 낮잠에 들었다. 아이들을 깨울까 하다가, 괜히 내가 간다고 하면 일어나서 울까봐 뒀다. 사실 혼자 집에 가서, 물론 내일 출근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무겁다. 하루 뒷면 바로 만날 텐데도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면 어떡하지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어쨌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는데, 아빠가 태워주신다고 한다. 아빠와 타고 가는 차 안에서 어색함이 맴돈다. 아빠와는 단 둘이 있으면 뭔가 대화가 급격히 줄어든다. 아빠는 계속 “아니, 저녁을 먹고 가야지”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서울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가면 10시가 거의 다 될 것 같다고 하니, 피곤해서 어쩌냐 걱정하신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터미널에서 뭐라도 먹으라고 돈을 또 주신다. 저녁을 못 먹이고 보내려니 마음이 무거우신가보다. 돈을 받아들고 “괜찮아 진짜 배고 안고파”라고 하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가서 문자 할게” 라고 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고, 누군가의 딸이었다. 나에겐 한없이 안쓰럽고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아이들이 있고, 또 나를 한없이 아이같이 보고 챙겨주려는 엄마 아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