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쓰지 말자 Oct 24. 2021

이 빠진 날

“은성이 이가 흔들린지 한참 됐는데, 빼야할 거 같아. 저러다 덧니나면 어떡해” 그렇게 시작한 아랫니 빼기. 신랑은 어릴 때 본 대로 실을 이에 묶고 “은성아 좀만 참아”...그사이 은성이는 눈을 질끈 감고 펄쩍 펄쩍 뛴다. “은성아 가만히 있어야 돼. 그냥 한방에 끝내자”  하더니 이마를 ‘퍽!

’ 

근데 딸려 나온 건 아무것도 없고 실만 허공에서 휘적. “은성아 한번만 더해보자” 하고서 그날 5번의 시도가 더 있었다. 이를 뽑을 때마다 나는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영광의 순간을 찍기 위해...하지만 그날 이를 뽑는 건 실패했고, 아이에게 트라우마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은성인 그 이후로 이에 손도 갖다 대지 못하게 한다. 양치질 할 때 마지막에 내가 한 번 씩 해주는데, 그때도 행여나 이를 뽑을까 입을 딱 들어 막는다.  

    

그 주 주말 은성이를 앉혀놓고 별의별 협박과 회유를 시도했다. “이 뽑고 게임하자. 은성이 좋아하는 동영상 뭐야. 그거 보여줄게” “너 지금 안 뽑으면 치과간다. 은성아 이거 안 뽑으면 안돼” “은성아. 이건 안하면 안되는 일이야. 엄마가 안 해도 되는 일이면 왜 굳이 너 힘들어 하는데 시키겠어”  

    

정말 내가 지금까지 은성이게 쏟아낸 잔소리 중 가장 많은 잔소리를 뱉은 기간인 듯하다. 차라리 내 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나는 어릴 때 어땠지? 라는 생각도 했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첫 이를 뽑을 때 너무 무서워서 엄마 아빠가 이에 손을 갖다댈라치면 만지지도 못하게 울었던 것 같다. 하나 빼고, 두 개 빼고, 세 개 네 개 그 패턴에 익숙해지다가 또 한번의 위기는 어금니를 뽑을 때였던 것 같다. 어금니는 치과에 가서 뺐는데, 생각해보면 그땐 나이가 또 더 들어 대놓고 울지는 않았지만 두려워 치과에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 처음에는 다 그렇지, 거기다 은성이가 용기를 안 냈던 것도 아니고, 기껏 용기를 냈는데, 아빠의 어설픔에 트라우마만 갖게 된 것인데 ‘그걸 은성이가 왜 이렇게 겁이 많냐고 탓할 것도 아니잖아’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가 지나고,,,정말 은성이의 그 질긴 이는 흔들흔들, 정말 손만 대면 빠질 것 같은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은성이도 버텼다. 그때부터는 나도 조급해지기 싲가한다. 저리 오래 안 빼면 덧니가 날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부모로서 뭔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찜찜함이 몰려오면서 엄청난 부담과 마음의 짐이 됐다. 아이와 실랑이도 얼마나 했던지...

 ‘아..애가 저렇게 싫어하고 무서워 하는데... 그런데, 이는 안 뺄 수가 없는거잖아. 피하고 싶어도 피하면 안되는 거잖아’. 속으로 생각하다가 겉으로 “은성아, 엄마도 은성이가 정말 하기 싫다는거 시키고 싶지 않아. 그런데 이건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냐. 엄마가 공부를 하라고 했어. 공부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야” 은성이가 과연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을까? 아이가 이해도 하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한창 실랑이를 하다가 “그럼 이따 오후에 치과에 가자”라고 하고 집을 치우고 있었다. 은성이와 은재는 몸싸움을 하며 놀고 있었다.      

“엄마. 이 빠졌어” 은성이가 피를 흘리며 이를 들고 왓다. 

“뭐?” “진짜?”      

어머 은성아 고생했어 “아이고 어떻게 빠졌어?” 은재랑 놀다가 이불에 스쳐 이가 빠졌단다. 아..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쾌감이었다 마음한켠 오래 쌓아뒀던 ...숙제를 끝낸 기분.      

은성아 너무 고생했어. 이 이는 우리 소중하게 보관하자~~이제 예쁜 새 이가 날거야. 라며 은성이를 다독였다 은성이도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이 일을 겪으며, 여러 가지 후회를 했다 “때가 되면 해결 될 일을 억지로 밀어 붙여서 나도 그렇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게 했나?”, “나의 과거는 까맣게 잊은 채, 아이의 소심함만 탓했나”, “처음은 모두 두려운 것을”이라는 생각들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야 할 텐데, 아이가 처음 시련이나 실패를 겪는 일, 내 품안에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만 아이를 독립시켜야 하는 순간들을 내가 어떻게, 현명하고 대범하게 대처할까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살아가다보면 정말 하기 싫어도 뭔가를 해야 하는 순간은 오니까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엄마아빠가 날 보듯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