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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쓰지 말자 Oct 24. 2021

흥망성쇠...과거의 영예

제주도 여행 마지막은 제주도 북쪽에서 이틀을 머물기로 했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시간이 오전이었고, 렌트카 반납 등을 생각했을 때, 또 제주도를 가면 항상 남쪽 서귀포나 동북쪽 함덕 해수욕장 근처, 북서쪽 애월 등에서 머물러 봤지, 매번 공항과 가깝다는 이유로 여행 마지막에 잠깐 들렀던 북쪽에서도 한번 머물러 보자는 생각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 일부러 해안 도로를 따라 갔고, 이호테우 해변을 지나 우리가 머무를 숙소 근처인 용두암까지 갔다. 가는 길에 바닷가 앞에 즐비한 숙소와 횟집 등이 눈에 들어왔는데, 여느 지역과 다르게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전 지나쳤던 협재 해수욕장의 번잡함과 번화함, 북적거림보다는 비가 온 탓이기도 했지만 어둡고 조용한 기운이 강하게 맴돌았다. 비어있는 건물도 많았고, 영업을 하지 않고 방치된 카페와 횟집들이 눈에 띄었다. “아니 이런 명당 자리에, 저 건물은 저렇게 멋진데 완전 비어있네”. “저긴 영업을 안하나봐” 하는 곳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 ‘잘 안돼서 접었나보다’ 이것 또한 내 짐작이다. 하지만 어쨌든 짐작과 분위기 속에 ‘과거의 영광을 잊은 채 방치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과거엔 꽤 화려한 숙소였던 곳은 스타벅스가 차지했고 (그건 그나마 회생을 한 케이스다), 나머지 건물들은 흉몰스럽게 방치돼있었다. 몇 해 전, 애월 바닷가를 갔을 때, 그 몇해 전 갔던 조용한 바다와 에메랄드 빛 바다를 기대하고 갔었지만, 불과 1년사이 분위기가 확 바뀌어 파도 소리보다 공사소리가 이어졌고,  크레인 차와 포크레인이 즐비한 모습을 봤던 그 때의 시간과 오버랩됐다. 그때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남아나는 땅이 없겠다’라는 씁쓸함을 안고, 이후로 애월쪽으로는 발길을 끊게 됐다. 그 곳과 달리 용두동쪽 바닷가는 휑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성 모양이거나 전면 유리 건물이거나 건물 디자인을 봤을 대 아마 90년대나 2000년대까지 번화했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사람들은 언제까지 버티다 건물을 비우게 된 것일까.      


인생은 ‘새옹지마’이고, 사람마다 ‘때’가 다르다는 걸 언예인들을 보면서 느꼈다. 난 어린 시절 , 가수 김원준을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때 그가 데뷔했는데, 정말 어떻게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을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빠졌다. 열정적으로 팬클럽 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정말 그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봤고, 같이 기뻐하고 마음 아파했다. 하필 내가 좀 머리가 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연예활동은 지지부진했고, 그 또한 과거의 인기와 영광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또 그로부터 지금 10년~20년이 지났다. 그는 계속 밴드 활동도 하고 정기적으로 앨범도 내고, 또 라디오 DJ도 하고, 교수님도 됐고, 뭔가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인생은 길게 봐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김원준이 실패를 반복할 때 잘 나가나는 아이돌 가수들을 보며 너무 부러웠다. 저 가수는 노래도 별로고 얼굴도 별로인데 앨범만 내면 잘되네, 라며 시샘을 했다 하지만 또 지금 그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실패를 겪고 있기도 하고,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겉으로 봤을 때)인생의 쓴맛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인생은 길게보면, 흥망성쇠가 있고 새옹지마가 있다. 


얼마전 TV를 보는데 한 정신의학과 의사가 “인생의 가장 큰 저주는 젊은날의 성공”이라고 하더라. 그 말에 무릎을 탁 치고, 한동안 그 말을 계속 되새겼다.   나는 늘 나의 성공을 기다리고 있고, 기대하고 있다. 그 저변에는 ‘지금의 나의 자리가 만족스럽지 않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해뜰날은 언제 올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냥 적절한 질투와 시기가 있지만, 큰 좌절이 없는 평탄함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만약 인생에서 희・비가 교차하는게 누구에게 다 적요되는 것이라면, 내게 닥칠 ‘비’는 감당이 가능한 담대함이 내게 있길 바라고, 내게 찾아올 ‘희’는 단편적인 것보다 길게 누릴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어찌보면 이미 내가 그런 희비를 겪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그걸 희인지 비인지 모르는 것 일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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