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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쓰지 말자 Oct 24. 2021

허탕의 미학

 원래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짜는 타입은 아니었다. 심지어 외국 여행을 가는데도 비행기표만 끊어 놓고 일주일 전까지 숙소도 예약하지 않는 그런 타입이었다. 친구와의 여행에서는 친구를 따랐고, 연인과의 여행에서는 남자친구의 가이드에 쫓아다니기만 했다. 닥치면 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냥 흐르는 대로 맡겼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부터 여행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다.  머릿속은 쉬지 않는다. 준비물과 일정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한다. 아이와 관련된 준비물이 워낙 많기 때문인데, 돌 전 만 해도 분유통에 젖병에 젖병 솔, 족쪽이, 쪽쪽이 통, 간식 통, 물티슈, 기저귀, 유모차 등 생각지도 못할 준비물들이 넘쳐났다.      


이유식 단계로 넘어가면 짐은 더 많아진다. 그러다 그 시기가 지나면 물병 하나 정도 들고 다니면 되지만, 기저귀와 여벌옷은 그냥 ‘상수’.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둘째가 기저귀를 떼면서 새삼 짐이 많이 줄었다. 여행 짐에 대한 사설이 긴 건, 준비를 제대로 안하면 하나하나가 다 고생이기 때문이다. 쪽쪽이를 놓고 가면 밤이 괴롭고, 유모차와 아기띠를 놓고 가는 순간 외출은 꿈도 못 꾼다. 물티슈를 놓고 나갔다가 갑자기 아이가 토를 하거나 저지레를 할 경우 방법이 없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만반의 준비를 해 가는 습성을 나도 모르게 갖게 됐다.      


일정도 마찬가지다. 만약 아이랑 같이 갔을 때 진흙밭이거나 자갈밭이어서 유모차를 끌고 가지 못할 경우, 맛 집인데 사람이 너무 많은 경우, 햇볕이 너무 강한 경우 등 이 모든 것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조건인데, 그 짜증과 떼는 고스란히 우리 부부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갈 곳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뒤졌고, 동선도 최대한 짧게 짜기 위해 머리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이게 여행인지, 출장인지’ 구분이 안 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쉬기 위해 휴가를 왔지만 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린 뒤, 욕심을 내려놨고, ‘지금 이걸 먹지 않아도 나중에 먹어도 된다’, ‘지금 이 곳을 가지 않아도 다음에 오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많은 걸 포기하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여름 휴가 일정을 길게 잡기 시작했다. 3박 4일이 아니라 기본 6박7일로 잡았다. 그리고 하루 일정을 한 개 혹은 두 개로 아주 적게 잡고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렸다. 가고 싶은 곳을 골라도 그때 그때 아이들의 상황에 맞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말 ‘느리게’ 여행을 즐기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여행 중 맛집에 가는 건 한번, 혹은 두 번, 그냥 이제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식당에서 편히 한 끼 먹는 걸 더 좋아했고, 예쁜 카페도 포기했다. 명소를 가는 것도, 상황이 돼서 가면 오늘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어떤 날은 아무 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6박7일, 7박 8일도 길다고 할 수 없는 일정인데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보내면 ‘이렇게 보내도 되나, 돈 아까운데’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지만, 여행 전체로 봤을 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더라.      


그러던 중 오전에는 신랑에게 자유시간을 준다는 명목으로 아이들과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오후에 신랑을 태워 바닷가에 물놀이를 가기로 했다. 신랑과 만나 우리 숙소와 멀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놀기 좋을 것 같은 종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종달해수욕장까지는 40분, 그때 시간이 3시였으니까 해수욕을 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가는 중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날씨 앱 세 개를 열어봤다. 비가 온다는 앱도, 비가 안 온다는 앱도 있어 비가 안오길 바라면서 갔다. 가는 중에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했고 막상 도착했을 때는 날이 너무 흐렸다.      


‘어쩌지? 기다려볼까?’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해수욕장이 폐장됐다는 걸 알았고, 우리는 자연스레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렇게 또 숙소 근처에 오니 1시간 30분이 훌쩍 흘렀다. 해는 저녁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고, 우리는 정처 없이 집 근처 해안도로를 달렸다. 그러다 발이 닿는 곳에 내려 검은 돌이 가득한 바다에 들어가 바다를 구경하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숙소로 향했다. 그렇게 오후시간이 날아갔다. 뭐 한 것 없이, 왔다갔다, 하는 데만 시간을 쓴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일정이 길어 ‘그 정도쯤이야, 어쩔 수 없지’ 라고 위로를 했던 것 같다.      


저녁이라도 맛있는 걸 먹고 싶었는데, 그 또한 6시면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거나 예약이 차 있어 그냥 숙소에서 서울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치킨을 먹고 아이들에게 tv를 틀어줬다. 가장 하기 싫은 것 중 하나였다. 서울, 우리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주도에서 똑같이 하고 있다니     


그 다음날도 일정은 계속 바뀌었다. 날씨가 변덕이었고, 우리 아이들의 인내심이 길지 않았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부가 좋아하는 자전거도 타고(아이들 유모차 레일을 끼우고), 곶자왈도 갔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다행이고, 그 일정이라도 가능하게 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오늘, 차를 반납하러 렌트카 센터로 향하는데, 과거 근 25년 전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왔던 기억이 났다. 그때 봤던 거리였다. 제주 시내였지만, 서울과는 또 다른 좀 소박한 시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 당시 유행했던 브랜드 옷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어렴풋한 느낌이 어린 시절, 14살,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제주도에 갔던 나로 이끌었다. 그때만 해도 제주도는 낯선 곳이었고, 중요 관광지 중심으로만 여행을 다녔다. 지도는 필수였다. 다른 버전의 지도 2~3개가 여행 막바지엔 너덜너덜 해져있다. 엄마 아빠가 렌트카 앞자리에 탔고, 어디를 가든 길에 서있는 초록색 이정표에 몸을 맡겨야 했다. 그때 나와 동생은 그래도 머리가 어느 정도 컸던지라, 또 제주도란 곳이 마냥 신기한 탓에 ‘여기 가자, 저기 가보자’라고 떼를 썼지, 가기 싫다고 떼를 쓰진 않았다. 아무튼 잊고 있던 그때, 그때는 내비게이션도 없었고, 어디를 가든 한 번에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돌아 돌아, 길을 헤매다 겨우겨우 도착하는 게 일상이었다. 길 가다 창문을 내려서 ‘저기요 길 좀 물을 게요. 한림수목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해요?’ 라고 매번 물어야 했다. 사람마다 달라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라고 해서 진짜 조금만 더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가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우회전 좌회전 시점이 달라 고생하던 적도 있다.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다. 그때는 헛걸음도 없고, 시간 낭비도 없이 우리가 컸으니까 여행을 계획대로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그 기억이 틀렸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그 때는 오히려 더 많은 실패를 했고, 더 많은 우여곡절 끝에 관광을 했다. 맛집이라는 것도 정말 지인들의 평가에 따라 달랐고, 온전히 그 사람의 취향에 따른 곳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맛 집은 실패할 확률이 더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너무나 많은 정보 속에서 실패를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마 무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모든 걸  검색을 통해 얻게 되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행에서의 실패와 시간 놀음은, 여행을 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자, 허락되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다음번 여행은 더 여유롭게, 천천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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