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같은 어린이집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언니 혹시 이모님 전화 받았어?” 라고 말문을 열었다. 무슨일이지? 은성이가 다쳤나?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 왜?” 라고 답하자 “언니 글쎄, 은성이 은재 oo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와서 쫓아냈어. 이모님 계속 따라 다니면서 여기 계시면 안 된다고 하는거야. 진짜 더러워서...어쩜 그러냐. 나도 가기 싫어 진다”
처음에는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전화를 끊고 계속 곱씹게 됐다. 자이는 우리 아파트 옆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다. 지난해 입주를 시작해 이제 1년 반 넘은 새 아파트다. 지난해에는 그 아파트 내에 있던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어린이집에서 처음에는 아파트 자전거 보관소에 유모차를 두라고 했다가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왔다며 등원 이후엔 유모차를 다시 가져가시라고 했던 일이 있다. 그 때도 “유모차가 무슨 혐오시설도 아니고, 텅텅 비어있는 자전거 보관소에 뒀다고 항의를 하다니,..국공립 어린이집 유치했다고 그렇게 자랑하고 현수막을 걸 때는 언제고” 라며 씩씩 거렸던 일이 있다. 그게 기분 나빠서 어린이집도 옮겼는데, 또 일이 터진거다.
기사에서만 봤던 일을 내가 겪으니 정말...오묘했다. 지난해 한 신축 아파트에 “타주민의 이용을 금한다”는 글이 기사화가 된 적이 있다. 그때도 기사를 보면서 “애들 놀이시설에 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진 못했다. 내가 겪어보니 이제 그 마음을 알겠더라.
집에 들어가는 길에 나름 동네에서 맛있다고 하는 빵집에 들려 빵을 사들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이모님께 빵을 드리면서 “오늘 속상한일 있으셨다고 얘기 들었다. 개념치 마시고 그냥 다니시라”고 하자 옆에서 은성이가 “이제 oo 놀이터 안 갈거야. 치사해. 하도 못 놀게 해서 안갈거야” 라고 했다. 은성이 앞에서는 애써 침착하게 “아냐, 은성아 가서 놀아도 돼. 그 아저씨가 잘못 하신거야” 라고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은성이는 그 얘기를 안 듣길 바랐는데, 은성이는 그 얘길 들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생각을 하고 은성이한테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흘뒤 자이 아파트를 지나며 은성이가 또 “나 이제 oo 아파트에서 안 놀거야. 치사해. 재미없어” 라고 말을 했다. 6살. 이제 어리지 않은 나이구나. 분위기 파악도 하고 뭐가 뭔지 아는 나이었구나. 화가 났다. 이제 겨우 6살 된 아이에게 자이아파트는 놀아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어른들이 너무 냉정하고 매몰차게 느껴졌다. 그 아파트를 제외한 주변 아파트들은 놀이터 이용에 대한 방침이나 기준이 없다. 그냥 다 열려있는 것이다. 놀이터라는 공간 자체가 그렇게 벽을 쳐야 하는 곳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권리로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하는게 정당화될 수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