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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쓰지 말자 Oct 24. 2021

8번의 결혼기념일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결혼을 했다. 그때는 ‘이 날이 덥지는 않을까, 하객들이 오는데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은 그때와 달리 어제부터 내린 비로 늦여름 초가을치고는 지나치게 선선하다. 선선하다 못해, 반팔이 어색하다. 저녁은 사실 아이들 때문에 외식이 어려울 것 같고, 서로 잠깐씩 시간을 내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결혼기념일이라고 밖에서 만났지만, 설렘보다는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은재 때문에 걱정이 많다.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은성이는 태권도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에 대한 얘기로 밖에서 둘이 만난 어색함을 채운 것 같다. 8주년 결혼기념일 점심은(식당 주인의 배려로 토스트에 촛불을 꽂았지만) 어찌 보면 무미건조한 시간이었다. 결혼 1년차, 2년차 때까지만 해도 부부가 손을 안 잡고 길을 간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언제나 늘 설렘을 주는 부부가 돼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나 또한 세상의 대부분의 부부와 비슷한 모습이 돼 있었다. 8년이란 시간을 사실 우리는 연애를 10년 했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시작한 기간이 무려 18년째긴 하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한 이후 예를 들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은 내가 챙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빠에게 외식을 하자고 졸랐고, 저금통의 돈으로 동네 기념품샵에 가서 원목원앙을 산다든지, 잠옷을 산다든지, 지금 생각하면 잔망스럽기 그지 없고, 또 기특하기 그지없는 선물을 준비했다. 최근까지도 부모님 결혼기념일에는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때마다 엄마아빠에게는 평범한 일상, 365일중 하루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아왔는데 나 또한 그렇게 변해가는 듯하다. 해명을 하자면, 예전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도 일이지만 아이가 그 사이 둘이 생겼다. 육아를 하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 과정에서 설레는 감정보다는 이제는 ‘동지애, 전우애’를 느끼게 됐다. 그게 어떨 땐 서운하기도 하다. 내가 되지 말아야지 했던 모습으로 향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아이러닉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30대40대 직장생활이나 자기계발 등에서 힘을 쏟아야 하는 때, 또 나를 찾는 사람이 많은 때, 동시에 집에서도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부모가 가장 필요한 시간이니 말이다. 이 둘 사이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머릿속과 몸은 늘 해야 할 일들로 바삐 움직이고, 쉴 틈이 없다. 근데, 이제 곧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내 곁을 점점 떠나가는 순간, 회사나 사회에서의 나의 역할이나 해야할 일도 줄지 않는가. 그런데 결혼생활도 그런 것 같다. 설렘과 풋풋함을 이어가고 싶지만, 그 중간 부부간의 사이를 벌여놓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게 된다. 그 과정을 잘 이겨내면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사랑이 상큼함보다는 숙성된? 사랑이겠지? 뭐랄까, 숙성된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몰라서, 막연히 과거가 그립다. 먼 훗날, 지금의 글이 어떻게 읽힐까. 어쨌든, 8주년 결혼기념일은 평범한 하루 중 약간 다른 하루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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