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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쓰지 말자 Oct 24. 2021

일탈의 맛?

너무 화가나’ 신랑이 연락도 없이 자정을 넘겨 집에 왔다. 저녁 약속이 있다는 건 알았다. 저녁 약속 전날 “백신 맞았어도 10시까지만 식당 이용이 가능한 거지?”라고 묻는다. “응, 백신접종자는 인원 제한에서만 빠지는 거고 10시 영업 제한은 똑같지” 약속 가기 전날부터 그날의 만남이 길어질 걸 예상한 건지, 아니 예상 했다기보다 결과적으로 이미 마음을 그리 먹었던 거 아닐까.      

아무튼, 10시쯤 헤어지면, 아무리 늦어도 11시쯤이면 집에 와야 하는데 12시를 넘겨 온 것이다. 술 냄새도 진동을 했다. 불과 몇 달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그때는 자정을 넘겨서도 안 왔길래 전화를 했더니 전화도 연결이 안됐다. 신호가 몇 번 울리고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반복했다.  한창 한강 실종 사건이 있을 때였기 때문에 엄청 불안한 마음으로 졸이며 기다렸다. 연락이 안 닿는 한 20여분 동안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때도 가게 문이 닫힌 후 후배와 사무실에서 술을 마셨다고 해서 정말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또 반복된 것이다.      

아침에 출근한 뒤 ‘나 오늘 늦게 들어갈 테니 애들 챙기고 나 찾지마’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화가 가시지 않았다. ‘내 말을 무시하나,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등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각종 집안일 공과금, 아이 학원, 집 문제 등 과제를 잔뜩 냈다.  ‘넌 네 일한다는 핑계로 집안의 대소사에는 아무 관심도 없지’ 이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우리는 맞벌이인데도 불구하고, 가정에 관여하는 비율이나 정도가 너무나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해 늘 불공평하다는 불만을 품어 왔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이 참에 관계 설정을 다시 해야겠다. 아무튼 오늘 밤은 어디서 자야 하나 생각하며 호텔,숙박 앱을 다운 받았다. 내가 오늘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마음 먹은 건 ‘너도 똑같이 당해봐. 연락 안하고 늦게 들어가는 게 어떤 마음인지’라는 생각이었다.  아 그런데 처음 혼자 호텔을 가보는 것이라, 예약하는데 한참 고민했다. 오후 3시가 지나서 점점 오전에 봐뒀던 가성비 좋은 방들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쩌지, 그냥 한번은 넘어갈까? 아 그런데 지난번에도 그냥 넘어갔는데’ 그러다 ‘에이 모르겠다’ 하고 예약을 했다. ‘이것도 한번 해봐야지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시도하지, 계속 주저하다 못할거야’라고 생각하고 예약을 했다. 퇴근하고 호텔까지 가는 길도 마음이 싱숭생숭. 갑자기 애들이 눈에 밟히고, 아이들이 제일 걱정되고 이래저래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결제까지 했으니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어차피 내일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라 완전히 호캉스를 즐길 수는 없지만, 호텔 근처에서 치킨바비큐와 맥주 한 캔을 구입했다. 그리고 체크인을 했다. 설명을 듣고 사인을 하고, 기분이 너무 새로웠다. 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와봤고 늘 나는 누가 예약을 하면 따라간 입장이라 모든 게 새로웠다,  직원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하며 방 키 사용법도 알려줬다. 호텔 키를 받아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갑자기 들뜨기 시작했다. 호텔 키를 엘리베이터에 대니 자동으로 내가 머무를 층에 내려주는 시스템도 나의 마음을 더 설레게 했다. 최신식 호텔에 왔다. 이런 느낌?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풀고 냉장고에 맥주를 넣었다. 샤워를 하고 가운을 걸치고 나와 TV를 켰다. 이렇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TV를 보는 게 얼마만인가,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마땅히 재밌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틀고, 맥주를 꺼내와 치킨과 먹기 시작했다. 카! 조금 전의 걱정과 심란함은 어디 갔나. 먹다가 배부르면 베개를 기대로 누워 티비를 봤다. 당장 내일 출근이라 별거 한 건 없지만, 그냥 좋다. 신랑에 대한 화가 다 사라졌다. 10시반. 신랑에게 메시지가 왓다. “아이들 잠들었어, 이제 가게 문도 닫았을 텐데 들어와야지” 무시했다. 그리고 또 즐겼다.     

 오늘 호텔에 온 걸 언제까지 비밀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일탈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일주일 연박을 해야겠다’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가끔은 필요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아이들이 원하는 걸 먼저 해오는 게 익숙했던 탓에 단지 누워서 tv를 보는 소소한 재미마저 잊고 살았다. 아마 그건 신랑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주는 어렵겠지만, 3개월에 한번이라도? 이렇게 각자 호텔이든 다른 곳에서든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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